[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가 무산되면서 국제유가가 장중 6% 폭락해 4년만에 배럴당 60달러선으로 떨어졌다.
내년초까지 감산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재고증가로 국제유가가 최악의 경우 배럴당 35달러선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P와 블룸버그 등 주요외신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 12개국으로 구성된 OPEC는 27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각료회담에서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지난 9월 현재 OPEC의 하루 생산량은 사우디 950만, 이라크 330만, UAE 280만, 쿠웨이트 270만, 베네수엘라 250만, 나이지리아 190만, 앙골라 170만, 알제리 110만, 리비아 80만, 카타르 70만, 에콰도르 60만 배럴(1배럴은 159ℓ)로 총 쿼터 3천만 배럴을 약 40만 배럴 웃돈다.
OPEC 회원국은 따라서 이날 결정에 따라, 예를 들어 사우디가 자국 쿼터인 930만 배럴 유지를 위해 20만 배럴을 줄이는 것과 같은 할당량 준수 행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 폭락, 4년만에 배럴당 60달러선 추락=산유량 동결 결정은 곧바로 유가 폭락으로 이어졌다.이날 뉴욕 금융시장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휴장한 상황에서 WTI 즉시 인도분 가격은 시간외 전자거래에서 전거래일 대비 6.3% 급락, 배럴당 69.05달러까지 밀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국제 유가 기준물인 북해산 브렌트유 내년 1월 인도분은 런던 인터컨티넨털 선물 거래소 시장(ICE)에서 배럴당 6.50달러 폭락한 71.25달러에 거래됐다. 장 후반 낙폭을 일부 만회해 전일대비 6.65% 급락한 배럴당 72.5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러시아 등 석유수출국 경제 비상=OPEC의 산유량 동결은 석유 수출에 사활을 거는 러시아에도 타격을 줬다. 러시아가 석유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어들면서 경제를 더 옥죌 것이라는 전망으로 루블화 가치는 사상최저치로 추락했다. 6월 중순 이후 달러에 대해 27% 폭락한 루블은 이날 하루동안 3.2% 급락한 48.7루블로 곤두박질쳤다.
주요 산유국인 노르웨이 크로네화 가치도 이날 달러화 대비 최대 1.7% 급락한 6.9441달러를 찍었다. 이는 지난달 16일 이후 가장 큰 하락세이며 2009년 3월 이후 5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달러화당 캐나다 달러화 가치도 장중 0.8% 떨어진 1.1340캐나다달러로 1주일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원유는 캐나다의 최대 수출품목이다.
▶3차 오일전쟁 승자는?=OPEC의 이번 합의는 무엇보다 낮은 유가를 일정기간 유지해 미국산 셰일오일과의 가격경쟁력 격차를 벌리는 동시에 시장지배력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석유 부국 사우디가 주도한 결과로 보인다.
OPEC 내에서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우디는 현재의 낮은 유가를 버틸 만큼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감산보다는 쿼터 유지를 선호해왔다. 반면 석유 재정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베네수엘라와 이라크 등은 감산을 통해 유가 상승을 노려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애초 사우디와 베네수엘라, OPEC 역외 산유국인 러시아와 멕시코 등 4개국이 25일 가진 사전 회의에서 감산 합의에 실패했을 때부터 이번 쿼터 유지는 예고됐다.
이번 쿼터 유지로 유가 저공비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라크 석유장관은 배럴당 65∼70달러를 바닥으로 내다봤다. 또 사우디는 단기적으로 배럴당 60달러까지 유가를 끌어내렸다가 80달러대에서 안정화시킬 구상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내년초까지 감산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최악의 경우 배럴당 35달러선까지 밀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OPEC의 이날 결정이 유가 하락에 대응하는 OPEC의 입장 변화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OPEC은 세계 석유시장을 주름잡으면서 유가가 하락하면 늘 ‘전가의 보도’처럼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미국의 석유생산이 30년만에 최대 수준으로 확대되고,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최대 산유국 경쟁을 벌이는 등 비 OPEC 산유국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영향력 감퇴에 직면했다.
중국 성장률 둔화, 일본 경기침체. 유로존(유로 사용 18개국) 둔화 등 세계 경기 둔화로 석유수요가 줄어드는 가운데 시장 영향력마저 위축되면서 감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 하락에 직면한 OPEC이 산유량 감산이 아닌 동결 결정을 내린 것은 또 미국 셰일 석유에 대한 ‘가격전쟁’이라는 측면도 있다.
컨설팅 업체 IHS 에너지의 석유 담당 애널리스트 제이미 웹스터는 “이걸 가격전쟁이라고 부고 싶지는 않지만 미 셰일 석유에는 매우 공격적인 시험이 될 것”이라면서 “OPEC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선수를 친 셈”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등이 주도한 동결 결정은 그러나 재정 형편이 열악한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이란 등 OPEC 일부 회원국들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 러시아 등 비 OPEC 산유국들과 OPEC 산유국, 또 OPCE 산유국 내부의 가격전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석유 애널리스트 아므리타 센은 “누가 더 지갑이 두툼한지 겨루는 전쟁이자 적자생존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사주를 받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3차 오일전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유가급락으로 원유수출 경제체제인 러시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일부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러시아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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