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웨이데이즈의 포스터.
영화 어웨이데이즈의 포스터.

1979년 잉글랜드, 훌리건, 마약, 록 음악<어웨이데이즈>는 축구 훌리건을 기본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다른 훌리건 영화와는 달리 젊은 시절의 방황과 고뇌를 다루고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영국 뒷골목을 배경으로 불량배들과 마약, 그리고 록 음악이 흐르는 이 영화의 분위기는 유명한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 spotting)>을 닮아 있습니다. 이 독특한 설정과 분위기를 높이 사서 일까요? 이 영화는 2009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Pifan)에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후반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콘 이었던 닥터 마틴, 한때 영국 불량배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콘 이었던 닥터 마틴, 한때 영국 불량배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일탈을 꿈꾸던 젊은이, 그러나…영화는 1979년 리버풀 근교에 위치한 트랜미어 로버스(Tranmere Rovers FC)의 훌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근거지는 감미로운 영국 록 음악이 잘 어울리지만 어쨌든 회색빛이 감도는 전형적인 영국의 산업 도시이지요. 주인공 카티(Carthy)는 예술대학을 나왔지만 은행에서 따분한 업무만 하는 젊은이입니다. 매일 지루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옵니다. 카티는 어느 날 축구장에서 난동을 피우는 갱단을 목격합니다. 그들은 더 팩(The Pack)이라 불리는, 그 지역에서는 나름 유명한 훌리건 패거리들이지요. 더 팩을 본 카티는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찾아갑니다. 하지만 더 팩의 구성원들은 카티를 풋내기 취급하며 내쫓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더 팩의 문을 두드리는 카티. 그런 카티에게 단 한 명의 단원이 마음의 문을 엽니다. 바로 카리스마 넘치는 엘비스(Elvis)이지요. 상스러운 욕설을 외치며 온갖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더 팩의 다른 단원들과 달리 엘비스는 말이 없고 조용하며 어딘가 쓸쓸함 마저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카티는 엘비스를 통해 더 팩의 정식 단원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엘비스는 카티와의 개인적인 친분만 쌓길 원하죠. 엘비스는 더 팩의 단원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팩이 쓰레기 같은 집단이라고 생각하며 카티가 그들에게 물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겉으로는 ‘의리’나 ‘우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이기심과 비열함 만이 판치는 훌리건 집단의 속성을 간파하고 있는 엘비스. 그는 카티가 그런 훌리건 집단에 의해 상처를 받을까 걱정합니다. 그런 엘비스의 마음도 모르고 카티는 점점 더 팩과 행동을 같이 하고 타락의 길을 걷습니다.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그가, 이제는 원정 경기에 따라 나서 상대편 훌리건들과 칼을 휘두르며 싸움에 나섭니다. 그저 젊은 날의 일탈 만을 원하며 점점 순수함을 잃어가는 카티의 모습을 보며 엘비스는 착잡해 합니다. 그리고 결국 카티는 조직에서 지나치게 나서다가 다른 조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내쳐집니다. 엘비스는 그런 미래를 예감이라도 한 듯 회색빛 철길 위의 육교에서 카티와의 즐거웠던 나날들을 쓸쓸이 회상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지향하는 바가 다른 두 사람의 우정. 그 탁월한 심리 묘사영화는 두 청년 간의 심리적 거리의 완급을 잘 조율하며 탁월한 심리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삶 속의 일탈 만을 꿈꾸는 카티. 카티에게 엘비스는 자신을 갱단으로 이끌어 줄 연결 고리입니다. 반면 엘비스는 카티와의 인간적인 교류를 더 소중히 합니다. 언젠가는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엘비스. 엘비스에게 있어 일탈은 갱단의 일원으로 폭력과 여자에 심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희망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 ‘베를린’으로 대표되는 신천지로 떠나는 것이지요. 그런 엘비스에게 있어 자신과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카티는 소중한 동료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같이 베를린으로 떠날 동료 말이지요. 하지만 카티는 이런 엘비스의 마음을 몰라줍니다. 카티가 점점 훌리건들과 친해 질수록 엘비스와의 거리는 멀어집니다. 이 영화는 이런 둘 간의 갈등을 잔잔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클래식 기타를 치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클래식 기타는 큰 소리를 낼 수 없기에 오히려 소리를 낮추는 것이 강조의 표현이 된다”고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하거나 요란하진 않지만 조용한 가운데 클래식 기타를 치듯 두 인물의 긴장감을 묘사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마치 조연 엘비스가 주연처럼 느껴질 만큼 관찰자적인 시점을 절묘하게 채용하고 있는 이 영화의 심리 묘사는 인상적입니다. 캐주얼 문화의 시작, 아디다스 운동화와 리버풀앞서 캐주얼에 대해 설명하면서 캐주얼로 대표되는 테라스 문화가 1970년대 후반 리버풀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어웨이데이즈>는 바로 그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리버풀 근교의 트랜미어(Tranmere Rovers F.C.) 훌리건들은 아디다스 운동복과 신발을 단체로 신고 다닙니다. 바로 초창기 캐주얼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1999년,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서울에는 ‘닥터 마틴(Dr. Martin)’이라는 신발의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소위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마치 닥터 마틴 신발을 신고 다녀야 준수한 선남, 선녀가 되는 것 같은 분위기였죠. 솔직히 그 장면을 보고 재미있더군요. 닥터 마틴은 사실 캐주얼이 등장하기 직전 스킨헤드(skinhead)로 대표되는 영국 극우세력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지요. 경찰들이 캐주얼의 명품 옷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닥터 마틴을 신은 스킨헤드족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그 당시를 그린 영화 <디스 이즈 잉글랜드(This is England)>에는 스킨헤드에 들어가려는 꼬마가 어머니에게 닥터 마틴 신발을 사 달라고 조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저런 껄렁한 신발은 신으면 안 된다고 아들을 나무라죠. 한때 영국 불량배들의 상징과도 같은 신발이, 30년 후 지구 반대편에서는 부유한 청년들의 드레스 코드가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요? 캐주얼의 선구자답게 더 팩의 단원들은 하나같이 특유의 세 줄이 수놓아진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카키색의 점퍼를 걸치고 있습니다. 초창기 캐주얼들의 복장은 지금 기준에서 보면 얌전한 학생이나 동네 청년의 복장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초창기 캐주얼 문화와 함께 이 영화를 채우고 있는 문화 코드는 또 있습니다. 바로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감미로운 록 음악입니다. 비틀즈로 대표되는 브릿 록(Brit Rock)은 리버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도시이지요. 연기처럼 몽환적이고, 초콜릿처럼 감미로운 영국 록 음악은 방황하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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