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비사회에서 잠은 구습이자 유물 ‘잠들지않는 시장’은 자본주의 최후 이상향 선진국 등은 이미 24/7의 세계에 함몰 소셜미디어의 노예된 현대인 기하급수 증가 잠의 강탈은 ‘꿈꿀 권리의 박탈’을 의미

지난 5년간 미국 국방부는 회정수리북미멧새라는 참새류의 철새를 연구했다. 이 새는 알래스카에서 북멕시코에 이르는 이동경로 중 무려 7일 동안이나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미 국방부의 연구 목표는 잠들지 않는 병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1990년대말의 어느 러시아-유럽 우주개발 컨소시엄은 태양광선을 지구에 반사할 인공위성을 만들어 궤도에 진입시키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반사판을 갖춘 수많은 인공위성들을 이용해 밤이 계속되는 시베리아와 러시아 오지를 대낮같이 밝힘으로써 산업자원 및 천연자원 개발 작업이 24시간 계속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밤이 없는 도시, 불면의 지구, 잠들지 않는 시장이야말로 현대 소비사회와 자본주의의 최후 이상향이다. 불면의 병사, 수면 없이도 건강하게 일하는 노동자, 잠들지 않고 쇼핑하는 소비자는 오늘날 국가와 기업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그러므로 ‘잠’은 인류의 낡은 습관이며, 폐기되어야 할 전근대의 유물일 뿐이다. ‘잠’은 노동의, 소비의, 자본의, 국가의, 기업의 ‘적’이다. 현재 북미 성인은 평균 하룻밤에 대략 6시간 반을 자는데, 한 세대 전에는 8시간, 더 이전인 20세기 초에는 10시간이었다. ‘6시간 반’만큼의 영토는 현대 소비사회엔 최후의 ‘미정복지’이며, 온통 밝고 투명하며 측정가능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은 ‘얼룩’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예술사ㆍ고고학부 조너선 크레리 교수가 ‘24/7 잠의 종말’에서 잠과 현대 소비사회의 관계를 보는 시각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저서는 잠을 통해 소비사회와 자본주의, 정보사회, 디지털기술 등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책이다. ‘24/7’은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되는 시장을 뜻한다. 영어 원제의 부제는 ‘후기 자본주의와 잠의 종말’(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이다.

저자에 따르면, 선진국을 비롯한 이 세계는 이미 24/7로 운영되고 있다. 잠은 노동과 소비가 멈추는 시간이며, 그래서 무용한 퇴행일 뿐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농경사회에 뿌리박은 삶의 리듬, 노동과 여가, 일과 휴식, 활동과 잠의 패턴을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이가 새로운 약품 덕택에 자신의 일을 100시간 동안 연이어 수행할 수 있다면 누가 이에 반대하겠는가? 신축적인, 그리고 줄어든 수면 시간은 더 많은 개인적 자유를, 즉 개인의 필요와 욕망에 더 잘 맛도록 삶을 맞춤형으로 조직하는 능력을 허용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됐다.

꿈과 비몽사몽의 상태를 포함하는 잠은, 이성이 지배하지 못하는 흐릿하며 불투명하고 매끄럽지 않은, ‘비균질적인’ 것이다. 24/7은 잠의 시간을 동일하고 통일적이며 주름 한 점 없는 매끄러운 균질하고 균일한 시간으로 만든다. 시간과 개인의 개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한병철 교수는 ‘투명사회’에서“불투과성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다”고 했다. 즉, 나도 모르는 나, 자기 자신조차도 완전하게 파악되지 않는 자아, 이성의 빛에 노출되지 않는 미지와 신비의 영역, 늘 불투명한 나머지가 존재하는 영혼이 인간의 본질이자 존엄성의 근거였는데, 개인을 둘러싼 미디어를 통해 노출과 감시가 일반화된 투명사회이자 정보사회로서의 현대사회는 이것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겐 ‘보호받은 존재의 어둠’이며, ‘24/7’의 저자 조너선 크레리에게선 ‘잠’이 표상하고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최근의 연구를 인용해 밤에 잠을 자다가 메시지나 정보를 확인하려 한 번 이상 일어나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한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트위터 등의 SNS로 ‘전시’할 수 없는 일상, 맛집이 아닌 식당, 인상적이지 않은 표정, 재미없는 만남, 근사하지 않은 풍경, 희귀하지않은 소품 등은 점점 더 쓸모없는 것이 돼간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노출, 그 자체를 위한 선택과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 박사는 1990년대말, 일찌감치 21세기는 ‘주목경제’가 될 것이며, 지배적인 세계기업은 꾸준히 사로잡고 통제할 수 있는 ‘안구(눈동자)’의 수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도처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나는 도처의 눈을 본다. 이제 단순히 스마트폰의 카메라나 모니터, CCTV, 모바일,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다. ‘구글 글래스’야말로 구글 에릭슈미트 회장이 사로잡고 싶었던 바로 그 안구의 증명이 아닐까.

저자는 통신과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의 발달이 민주주의와 인간 해방의 기획에 기여할 것이라는 예언들을 거의 ‘헛소리’라며 비판한다. 오히려 모든 개인들과 활동가들이 소셜미디어나 네트워크 등 사이버공간 속에 자신을 몰아넣는 바, 통제와 감시는 훨씬 더 용이하게 되며,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관계와 연대, 자기 실현의 움직임은 덧없고 별 볼일 없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은 우리 자신을 타인의 돌봄에 내밭기는 아직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경험이며, 기다림과 휴지의 반복적인 행위다. 그러나 24/7은 타인에 대한 신뢰와 타인을 위한 기다림을 모두 앗아간다.

결국, 저자에 따르면 현대 소비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잠의 강탈은 실제로도, 상징적으로도 “꿈꿀 꿘리의 박탈”이다. 그래서 잠은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리듬의 급진적 단절로서, 내일이면 훨씬 더 나아지고 새로워질 것이라는 회복과 갱생의 기대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꿈꾸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은 소비사회가 그리는 유토피아와 디지털 정보사회의 낙관적 전망을 둘러싼 환영과 신기루를 가차없이 벗겨내려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