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형법 92조의6 적용 유죄 기존 판결 변경

합의된 동성 군인 성행위 처벌 위험 사라져

대법 “성적 자기결정권도 보호법익” 강조

“동성간 합의 성행위, 처벌 평가 더는 불가능”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동성 군인 간 성행위에 따른 군형법상 성추행 여부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동성 군인 간 성행위에 따른 군형법상 성추행 여부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을 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그동안 군형법 92조의6은 군인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적용돼 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합의가 있었는데도 동성 군인간 성행위라는 이유만으로 처벌되는 일은 앞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군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유죄를 받은 A씨와 B씨의 상고심에서 군형법상 추행 유죄 부분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와 B씨는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영외에 있는 B씨 숙소에서 성행위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의 일부 혐의는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로 1·2심에서 무죄 판단 됐지만 증거가 유효하게 인정된 혐의에 대해서는 현행 규정이 ‘영외에서 자발적 합의로 이뤄진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이유로 1·2심에서 유죄 판결했다. 군형법 92조의6이 군인 등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당사자 합의 여부 등과 무관하다는 판단이었다.

1962년 제정된 군형법은 미국 전시법의 규정을 번역해 처벌하던 국방경비법 규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입법 취지는 군 내 남성 동성간 성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이후 군형법 규정은 2009년과 2013년 개정됐는데, 현행 규정은 ‘계간’ 대신 ‘항문성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행위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면서 객체도 군형법이 적용되는 ‘군인 등’으로 한정했다. 이 조항의 위헌성에 관한 지적이 계속됐으나 헌법재판소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군의 특수성 등을 근거로 2002년과 2011년, 2016년 3차례에 걸쳐 합헌결정 했다. 대법원도 2013년 법 개정 전 규정들에 대해 강제성 여부 등 제한 요건 없이 군인 동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라는 취지로 판결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동성간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현행 규정의 구성요건인 ‘항문성교 그 밖의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 해석은 유지하기 어렵다”며 기존 판례를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재 문언인 항문성교가 남성 간 성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점 ▷동성간 성행위가 추행의 개념표지인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운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현행 규정의 문언과 개정경위 등에 비춰 보호법익에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전통적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사적 공간에서 동성 군인이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처벌하면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행위에 관해 그 자체로 처벌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평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낸 8명의 대법관의 결론에 찬성했다. 나아가 상호 합의하에 이뤄진 성적 행위에 대해 군기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현행 규정을 적용해 처벌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별개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 사건은 2017년 초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이 성소수자 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부적절한 방법으로 취득하고, 적극적으로 수사 대상을 확대해 실질적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던 과거 행위를 수사하고 십여 명의 군인 등을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대법원은 그 과정에서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채 자백을 받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는 등 위법한 수사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이 사건에서도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이 부정됐다고 설명했다. 다수의견은 합의에 의한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은밀히 이루어진 경우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사생활의 영역에 있는 행위에 대한 수사가 필수적이고, 이러한 수사는 군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허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대법관도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dand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