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뮤지컬 ‘원스’의 남녀주인공에게는 이름이 없다.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는 빌리, 바루스카 같은 이름이 있지만 이들은 각각 ‘가이(Guy)’와 ‘걸(Girl)’로 지칭된다.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이번 뮤지컬에서 길거리 가수 가이역은 윤도현과 이창희가, 체코 이민자인 걸역은 전미도와 박지연이 맡았다.
최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이창희는 “정해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이역을 맡은 배우가 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배우의 성향이 많이 반영될 것 같다”며 “윤도현의 가이는 노래하거나 기타칠 때 아주 섬세한 면이 드러날 것 같고, 이창희의 가이는 저답게 표현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창희는 1990년대말 HOT, 젝스키스 등과 함께 가요계에서 활동했던 그룹 OPPA의 멤버였다. 원조 아이돌 가수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았지만 사실은 극중 가이처럼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아이돌 활동을 할 때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말도 마음껏 못하고 제약이 많았어요. 그룹이 해체되고 솔로 앨범을 준비했지만 엎어지는 바람에 군대에 갔어요. 음악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게됐죠. 김선영 선배가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너무 좋아’라는 표정이 보였어요. 되게 솔직해보였죠. 그래서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는 뮤지컬계에 입문하면서 프로필에 OPPA 경력을 아예 적지 않았다. 배우로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린이 뮤지컬에도 출연하고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멀티맨(여러 배역을 맡는 남자 배우)도 했다. 결국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주인공 김종욱을 맡게 됐고 뮤지컬 ‘미남이시네요’, ‘궁’, ‘고스트’ 등의 주역을 꿰찼다.
그리고 6개월간 오디션을 걸쳐 ‘원스’의 주인공이 됐다. 오디션 때 불렀던 곡은 ‘세이 잇 투 미 나우(Say it to me now)’. 영화에서는 가이가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기타를 부서질 듯 튕기며 처연하게 부르는 노래다. 뮤지컬에서는 앨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가이가 은행가 앞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힘을 다해 이 노래를 부른다.
“오디션 당시 ‘이 오디션 떨어지면 나는 1년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악에 받쳐 불렀죠. 오디션이 1차, 2차, 3차 계속 이어지는 데 아…. 지옥이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지옥이예요”
보통 뮤지컬 연습 때는 배우 본인이 등장하는 장면만 참여하지만 원스는 전 배우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습한다. 12명의 배우가 퇴장없이 계속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까지 연주하기 때문이다. 연습이 끝나도 배우들은 칼퇴근을 하지 않고 계속 남아서 연습을 이어갔다.
“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해야하니까 밥 먹고 기타만 쳤어요. 집에 연습용 기타가 3대 있어요. 곡마다 튜닝이 달라서 한음 올리고, 두음 낮추고를 반복해야 하니까 좀더 많이 연습하려고 각각 다르게 튜닝을 해놓았어요. 기타 연습하다 잠이 들때가 많은데 옆에 누워있는 기타가 매일 바뀌어요. 눈을 뜨면 기타한테 말을 걸죠. 오늘은 너니”
본공연 때 무대에서 연주하는 기타의 이름은 ‘로또’라고 지었다.
“넓은 미국 대륙에서 와서 제 손에 쥐어지기까지 확률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잖아요”
어느날 이창희의 어머니는 고생하는 동료 배우들을 위해 연습실로 떡을 보냈다. 떡 포장지에는 뮤지컬 ‘원수’팀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창희는 ‘원스’는 ‘원수’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 한줄기 빛’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연습 중이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상대배우인 박지연과는 뮤지컬 ‘미남이시네요’와 ‘고스트’에 이어 세번째로 호흡을 맞춘다. 전미도와는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처음 만났다.
“전미도 배우는 통통 튀지만 뿌리깊은 나무 같은 느낌도 들어요. 박지연 배우는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보니 귀엽고 발랄한 동생같은 느낌이예요. 두 여배우가 성격도 다르고 연기 방향도 달라서 그에 맞춰 제 연기도 달라질 거예요”
‘원스’는 아일랜드 밴드 스웰시즌의 노래를 엮어 만든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특히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 등 서정적인 노래로 유명하다. 그중 이창희는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웬 유어 마인즈 메이드 업(When your mind’s made up)’을 꼽았다.
“다른 배우들과 합주를 하면서 신나게 부르는 곡이예요. 극중에서 가이의 인생을 바꾸고,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베이스, 드럼 등 연주자들의 삶에도 변화를 주는 뜻깊은 곡이죠. 원작 영화에서는 안나왔지만 가이와 걸뿐만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스토리가 있어요. 결말은 따뜻하게 끝나죠. 뮤지컬은 영화보다 이야기가 자세해서 관객들이 또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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