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탄생 100주년 회고전

‘노실의 천사’ 개막…조각, 회화, 드로잉 아울러

방탄소년단 RM 소장품 포함 240여점 전시

자소상과 함께 찍은 권진규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자소상과 함께 찍은 권진규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모가지의 길이가 몇 치쯤 아쉽다. 송곳으로 찔러 보아도 피가 솟아나올 것 같지 않다. (…)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에 화장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을 나는 어루만진다.” (‘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 중)

일평생 천사를 찾는 ‘여정’을 떠났다. 여정의 시간은 규칙적이다. 매일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시 사이, 작업에 몰두하는 여덟 시간. 아침과 밤에는 구상과 드로잉을 하고, 오전과 오후에는 작품을 제작하는 우직하고 성실한 ‘수행의 길’이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면서’ 작가는 ‘오늘도 봄을’(‘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 중) 기다리고, 천사를 맞았다.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 권진규(1922~1973)는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빚어내는 ‘이상’을 찾으려 온전히 하루를 매만졌다. 그가 생애 마지막 일 년을 앞두고 쓴 시 ‘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이 지난한 과정을 설명한다. 그에게 ‘노실(가마, 혹은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의 천사’는 구현하고자 한 이상, ‘순수한 정신적 실체’로 해석된다.

조각가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회고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서울시립미술관, 5월 22일까지)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 회화, 드로잉과 아카이브 등 총 240여점을 아우른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방탄소년단 RM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를 찾았다. 그는 이 전시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 ‘말’을 흔쾌히 대여했다. [RM 인스타그램]
방탄소년단 RM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를 찾았다. 그는 이 전시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 ‘말’을 흔쾌히 대여했다. [RM 인스타그램]

전시에는 그가 찾은 ‘천사’인 동물상, 여성 두상과 흉상, 자소상, 부처와 예수상, 승려상, 기물 등 다양한 작품과 자료가 나왔다. 특히 이건희컬렉션, 가나문화재단, 개인 소장품도 대여했다. 대여 작품 중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의 소장품도 있다. 1965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이다.

권진규는 생전엔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다. 작품에 대한 무관심과 생활고가 그의 삶을 무겁게 짓눌렀다. 1973년 5월엔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숱한 좌절에도 ‘천재 조각가’는 성실히 견디고, 끈기있게 탐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며 ‘노실의 천사’를 찾았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을 추구했다.

전시는 작가의 불교적 세계관에 따라 시기별로 ‘입산’(1947~1958), ‘수행’(1959~1968), ‘피안’(1969~1973)으로 구성했고, 공간은 권진규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했다.

방탄소년단 RM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를 찾았다. [RM 인스타그램]
방탄소년단 RM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시를 찾았다. [RM 인스타그램]

‘입산’은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기다. 일본 시절 제작한 ‘마두’, ‘기사’가 이 시기의 작품이다. ‘수행’은 귀국해 손수 작업실을 짓고 수행자처럼 생활하며 반구상 부조 작품과 여성 흉상 등을 제작하던 때다. 기다란 목과 단정한 이목구비의 ‘지원의 얼굴’과 RM이 대여해준 ‘말’이 수행 시기도 분류된다. ‘피안’은 전통 재료인 건칠을 활용한 작품에 매진한 시기다. 세속적 삶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입문해 수행하듯 작업에 몰두했다. 마지막 4년은 한국 화단의 몰이해로 인한 좌절이 높아진 시기다.

한희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권진규는 일관되게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추구했다”며 “이를 위해 동양과 서양의 고대 유산을 참조, 자신만의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를 통해 영원성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한 연구사는 권진규를 ‘리얼리즘 작가’로 부르지만, 그가 추구한 것은 사실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이 아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혼’, 즉 ‘영원성’이라고 설명한다. 권진규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 온 썩지 않는 테라코타와 방부·방습·방충에 강한 건칠로 작품을 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원의 얼굴, 1967, 테라코타, 50x32x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자소상과 함께 찍은 권진규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지원의 얼굴, 1967, 테라코타, 50x32x2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자소상과 함께 찍은 권진규 [권진규기념사업회 제공]

삶의 궤적만큼 세상을 떠난 이후의 시련도 컸다. 유족은 권진규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수차례 좌절됐다. 근현대 조각사에 남을 그의 작품은 긴 시간 자리를 찾지 못했고, 유족 측은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한 기업에 작품을 일괄 양도했으나 갈등이 빚어졌다. 결국 소송을 거쳐 되찾아 지난해 141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권진규는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확고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라며 “그의 작품에 내재한 동시대적 의미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 전시를 마치면 7월 26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이어간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