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밥 그릇에 담긴 떡국, 북어포와 과일 접시…
유달리 격식을 차리는 유가의 스승 퇴계 이황 종가의 차례상에 올라온 음식이다.
구체적으로는 술, 떡국, 포,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5가지 제수를 진설하는데, 전이 한 접시라기 보다 한 조각이고, 과일도 한 접시에 대추 3개, 밤 5개, 배 1개, 감 1개, 사과 1개, 귤 1개를 담았다.
조촐하지만 갖춘 차례상이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2017년부터 제례문화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예서(禮書)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차례상에 진설하는 제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오히려 종가 보다 일반 가정의 차례음식이 5~6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례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는 설날의 차례의식을 새로운 해가 밝았음을 조상에게 알리기 위해 간단한 제수를 진설하고 예를 갖추는 일로 설명한다. 그래서 설날과 추석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하지 않고 차례[茶禮]를 올린다고 한다. ‘주자가례’에서는 설 차례 상에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등 3가지 음식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전염병이 돌 때는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
경북 예천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의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는 “역병이 번지기 시작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하여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썼고, 안동 풍산의 김두흠 역시 ‘일록’(1851년 3월 5일자)에서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하여 차례를 행하지 못하였다”고 기록했다.
예로부터 우환이 있을 때 차례는 물론 제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조상에게 제수를 올리는 차례와 기제사는 정결한 상태에서 지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전염의 우려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사람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전염병을 극복하고자 한 조선 시대 거리두기인 셈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우리 제례문화도 시대의 변화와 환경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며, “술과 떡국, 과일 한 쟁반을 기본으로 차리되, 나머지는 형편에 따라 약간씩 추가해도 예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요즘과 같이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일상의 변화를 통해 차례의 예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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