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없이 노래만으로 극 진행 ‘성스루’
고난도 안무·조명으로 빚은 생생한 감동
‘고전의 가치’는 시공을 초월한다. 15세기 프랑스의 파리는 어둠의 시대였다. 역병이 창궐했고, 백년전쟁으로 삶의 터전은 황폐해졌다. 교회와 귀족은 타락했고, 이방인(난민)은 핍박 받았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대성당의 시대’를 노래했다. “불화의 시대 앞에”서 “작은 것이 큰 것을 허물고, 세상은 새로운 천 년을 맞기”( ‘대성당의 시대’중)를 기다렸다. 더 나은 날을 약속하는 노래를 불렀고, 르네상스를 갈망했다. 혹독한 시절을 보낸 이들의 삶은 600년 후와 다르지 않았다. 그 시대 안에서 누군가는 순수한 사랑을, 또 누군가는 뒤틀린 사랑을 갈구했다.
1831년 쓰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뮤지컬 불모지’였던 파리에서 다시 태어났다. 작품은 15세기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와 아름다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대성당 주교 프롤로의 어긋난 사랑을 그린 스테디셀러다. 초연 이후 전 세계 23개국에서 9개 언어로 번역됐고, 15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오리지널의 힘’은 강력하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뮤지컬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리지널 버전은 브로드웨이나 국내 뮤지컬과는 차별되는 ‘프랑스 뮤지컬’의 매력과 강점이 녹아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무대 위로 배우들의 노래와 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것 위로 얹어지는 ‘빛의 예술’(조명)이 무대의 표정을 만든다.
작품은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극을 진행하는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니콜라 타라 프로듀서는 서면 인터뷰에서 “ ‘노트르담 드 파리’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는 극본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며 “반드시 대사를 통해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이 작품은 노래를 통해 극본의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노래는 그것 자체로 대사다.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가장 많이 묘사하는 동시에 공연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특히 프랑스어의 아름다운 발음과 운율이 노래를 통해 살아난다. 불어를 알지 못해도 물 흐르듯 이어지며 귀에 꽂혀 들어오는 발음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도 프랑스 뮤지컬만의 강점이다. 성스루 형식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특징을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노래의 비중이 높은 작품인 만큼 주연 배우들의 안무는 대폭 줄였다. 대신 안무팀을 별도로 뒀다. 기존 한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앙상블 배우들이 안무와 합창을 겸했던 것과 달리 프랑스 뮤지컬에서 댄서들은 오로지 ‘춤’에만 집중한다.
이 작품은 사실 ‘몸의 예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춤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전달하고, 상황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제작진에 따르면 댄서들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6주 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제작진은 “격렬한 안무를 표현하기 위해 파워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수준 높은 고강도의 체력 준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댄서들에겐 발레, 모던 댄스, 컨템포러리 댄스 등 뛰어난 능력이 요구된다.
니콜라 타라 프로듀서는 “안무의 구성이나 댄서들이 그 안무를 표현함에 있어 감정 표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강력한 댄스 테크닉과 감성이 어우러져 관객들로 하여금 각 장면마다 난민들의 격렬한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니멀하면서도 관념적인 무대는 배우와 댄서들의 움직임을 살리는 요소다. 연출을 맡은 질 마으는 “무대에 선 아티스트, 싱어, 댄서들의 퍼포먼스를 강조할 수 있도록 세트가 부각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무대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한다.
화려함을 채운 것은 조명이다. 겉치레를 덜어낸 무대는 모든 장면마다 조명으로 색을 덧입혔고, 각 캐릭터의 의상으로 고유의 특정 색을 부여했다. 매 장면 달라지는 조명은 이 작품의 시그니처다. 서로 다른 조명색을 사용해 각기 다른 분위기의 장소들을 만들어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연출했다. “조명 디자인 예술은 각각의 창작물에 대한 각기 다른 현실 사이에서의 수많은 측면들을 결합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제작진은 “조명은 극 중 이야기의 감정적인 부분을 서술하고, 음악의 강도에 따라 감정이 증폭될 수 있게 디자인했다”며 “이는 각 파트의 크리에이터들이 서로 시너지를 이뤄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마법”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26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 30~2022년 1월 16일까지 부산 소향씨어터에서 이어진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