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차세대 피아니스트

손정범 이택기 선율 정지원 한 무대 

네 대의 피아노가 쌓는 하모니 ‘장관’

 

“현대 피아노로 해석한 고음악…

바흐 자체가 돋보일 것”

차세대 피아니스트 손정범, 이택기, 선율, 정지원이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통해 한 무대에 선다. 네 사람의 나이와 경력은 모두 다르지만, 무대가 시작되면 이들은 모두 ‘동료’가 된다. 이상섭 기자
차세대 피아니스트 손정범, 이택기, 선율, 정지원이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통해 한 무대에 선다. 네 사람의 나이와 경력은 모두 다르지만, 무대가 시작되면 이들은 모두 ‘동료’가 된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만 스무 살부터 서른까지… MZ(밀레니얼·Z) 세대 피아니스트 네 사람이 한 무대에 오른다. “어릴 때부터 늘 봐오고, 같이 공부해온 훌륭한 선배들과 연주를 한다는 것이 영광이에요.”(선율) “잘하는 후배들은 항상 알고 있죠. 연주도 많이 들어봤고요. 패시지(Passage·악곡의 짧은 부분 혹은 악곡 구조상 중요 악상들 사이를 이어지는 경과구)를 주고받는 영역들도 많은데 준비한 부분들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돼요.”(손정범)

무대 위의 네 사람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11월 17일·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함께하는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을 연주한다. 여러 대의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곡은 흔치 않다. 진귀한 무대를 만들 주인공은 차세대 피아니스트 손정범(30), 이택기(25), 선율(21), 정지원(20). 막내와 맏형의 나이차는 ‘강산도 달라진다’는 10년이나, 무대에 서면 나이, 경력을 뛰어넘어 ‘동료’가 된다.

“일단 리허설이 시작되고, 공연이 시작되면 정확하게 모두가 동료예요. 선생님이든, 선배든, 더 어린 후배든 연주를 시작하면 배우는게 많아요. 저도 공연을 준비하며 동료들의 의견을 받아보고 싶고요.” (손정범)

이번 무대에선 바흐의 ‘피아노 한 대를 위한 협주곡’을 비롯해 피아노 두 대, 세 대, 네 대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무대를 위해 특별히 16인조의 ‘바흐 페스티벌 챔버 오케스트라’도 구성됐다. 공연을 앞두고 서울 서초동 스타인웨이 갤러리서울에서 만난 네 사람은 저마다의 설렘과 기대가 얼굴 가득 채워졌다. “혼자 하던 외로운 연주를 네 명의 연주자가 함께 한다”(정지원)는 것 자체가 이들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다. 흔치 않은 무대이니 만큼 “다가올 공연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이택기)하는 중이다.

함께 할 무대는 네 사람이 가진 생각들을 섬세하게 다듬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가장 나이가 어린 정지원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이디어를 융합해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작업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바흐가 남긴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비발디가 1711년 발표한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단조’를 편곡한 것이다. 바로크 시대 독보적 인기를 자랑했던 독주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위해 만든 것이 지금의 이 곡이다. 이들의 고민은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피아노는 줄을 두드려 내는 ‘타현악기’로, 강약조절이 안되는 하프시코드와 달리 음의 셈여림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에 여러 음을 짚을 수 있고 음량이 풍성한 하프시코드와는 “생김새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악기”(정지원)다.

정지원은 “바로크 시대의 악보를 현대의 악기로 치는 것은 고민할 부분”이라고 봤다. “현대적 악기이니 현대적으로 만들어 치는 게 맞는 거라는 입장도 있고, 그 당시의 음악이니 연주 양식에 따라 즉흥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을 테니까요.” (정지원)

선율은 “원전인 하프시코드 악기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융화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손정범도 동의했다. “이 곡이 여전히 고음악처럼 들린다면 현세대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지 않는 것이겠죠. 현대의 피아노로 접점을 찾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라고 해서 하프시코드에 가깝게 연주하기 보단 관객들에게 ‘이게 대체 무슨 음악이지?’ 라고 느껴지지 않을 설득력은 가져가야 할 것 같아요.” (손정범) 선율이 한 마디를 더했다. “바로크 장르라고 해서 억압되지 않게 들렸으면 좋겠어요. 그 당시엔 표현할 수 있는 악기와 공간이 한정적이었기에 표현이 안 됐던 거지, 연주자의 자유로움은 바로크에 더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정리되는 음악보다는 당시의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화려함이 돋보이면 좋겠어요.”(선율)

피아니스트 손정범, 이택기, 선율, 정지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함께하는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을 통해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가장 나이가 어린 정지원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이디어를 융합해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작업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상섭 기자
피아니스트 손정범, 이택기, 선율, 정지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와 함께하는 2021 경기피아노페스티벌’을 통해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가장 나이가 어린 정지원은 “네 명의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각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아이디어를 융합해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는 특별한 작업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상섭 기자

무대에서 네 사람은 같은 멜로디를 한 번씩 반복해 연주하기도 하고, 서로 소리를 쌓고 더하며 조화를 만들기도 한다. 유달리 귀가 좋은 관객들이 아니라면 네 사람의 소리를 구분하기 어렵다.

“사실 저희가 들어도 잘 몰라요. (웃음) 저도 유튜브를 찾아보는데, 대체 누가 어딜 치는지…피아노가 네 대이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선 피아노 소리가 계속 들리면 정신 없을 수도 있고요.” (정지원)

가장 큰 방향성은 ‘조화로움’이다. “누군가의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정말 힘들고, 그게 구분되면 도리어 연주를 잘 하고 있는 것도 아닐 것 같아요.” (손정범) 손정범이 생각하는 관전 포인트는 “바흐 그 자체”다. 그는 “세 대,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자신을 보여주기 보다, 음악 자체가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곡의 백미는 “바흐 특유의 푸가 형식”(손정범)이다. “혼자 연주할 땐 불가능한 푸가 형식이 네 사람이 연주할 땐 돋보일 거예요. 하나의 성부씩 연주하다 보니, 오르간에서 들을 법한 지음들이 형성돼 하모니가 이뤄지는 것이 장관일 거라 생각해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로 화성이 합쳐지면, 결국엔 다시 원점인 오르간 소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손정범) 이택기 역시 “피아노 소리보다 원래의 투박했던 하프시코드에 가까운 소리를 구현하고, 그것을 네 명이 연주하니 상당히 꽉 차있고 흥미로운 성부가 나오는 매력이 많은 연주가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관객들에겐 같은 연주를 할 때 달라지는 네 사람의 표정이나 움직임도 볼거리다. 이택기가 연주할 ‘1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에선 그의 자유로운 해석과 색깔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2~3년 전 연주했던 적이 있는데, 그 때와는 달라져 있으리라 생각해요. 지금은 연주 안에서 조금 더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음악 안에서 틀을 많이 벗어나진 않지만, 제 목소리가 들리는 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어요.”(이택기)

이르게는 예닐곱, 늦어도 초등학교 5학년 무렵 피아노를 시작해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는 네 사람은 한국 음악계의 오늘을 이끄는 얼굴들이다. 10년~20여년 피아노 앞에 서도 “연주는 하면 할수록 힘들고 외로운 일”(정지원)이고, 피아니스트로의 삶은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는 것”(선율)을 깨닫는 과정이다. “어릴 때의 패기보다 생각이 많아졌고, 때때로 매너리즘도 벗어나야 하는”(이택기) 상황이지만, 결국 음악으로 돌아간다. 음악으로 괴로워도, “위로가 되고 감싸주는 건 음악밖에 없기 때문”(정지원)이다. 그렇기에 “음악적 재능보다 찾아가는 재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끈질기게 배워나가고”(정지원), “자신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이택기) 부단히 애쓴다. 그 안에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음악인”(손정범)을 꿈꾼다.

네 사람의 고민과 꿈은 다시 무대로 나아간다. 이전엔 경험하지 않은 팬데믹을 마주하며 얻은 깨달음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손정범은 “홀에 관객이 앉아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엄청 소중한 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관객의 의미가 이들의 음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객이 없으면 연주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조금 더 관객의 입장이 돼보려 해요. 조금 더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해 어렵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것이 제가 해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손정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