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에서 70여 년간 겪었던 애증을 되돌아볼 때 이제 검사와 판사는 졸혼, 정확히 말해 졸연(卒緣)해야 한다.”
현재 서울고등법원 민사항고부 재판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형남 판사가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휴머니스트)에서 검찰 개혁을 두고 사법부와의 명확한 관계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한 말이다.
박 판사는 한국에서 검찰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된 상황과 최근 떠오르고 있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 문제를 거론하면서, 판사와 검사의 본연의 자리를 강조한다.
박 판사는 책을 통해 30여 년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인들이 궁금해하는 법적용의 잣대와 판결,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판사의 고민에 대해 차분하게 들려준다.
가령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범죄사건의 경우, 판사들의 판결이 대중의 예상과 다른데 대해, 분노와 응보 등 대중의 법 감정과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가를 판단하는 형법의 양형 차이를 설명한다. 처벌이 가벼워 범죄가 늘고 있다는 일반의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며, 엄벌주의 보다 필벌주의가 더 낫다고 강조한다.
최근 논란이 많은 소년법과 관련해선, 법 만능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중심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최근까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소년법 관련 청원은 1900여건. 이름을 올린 사람은 누적 390만명에 이른다. 저자는 사람들이 소년범죄가 늘어나고 잔혹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최근 10여 년간 전체 소년범죄와 강력범죄 사건은 성폭력을 제외하고는 약간 줄어드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소년법은 소년의 비행환경이 개인적인 문제라기 보다 사회적 문제로 보는 데 기반하고 있다. 소년법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례로, 현재 법원으로 넘어오는데 3~5개월이 걸리는 소년범 사건을 미국과 일본처럼 경찰이 바로 소년부 판사에게 송치,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형사 재판을 두루 맡아온 저자는 법의 논리와 언어를 통해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재판의 근본임을 잊지 않는다. 2009년 한 공무원이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뒤, 공무원연금공단이 유족에게 보상금을 주지 않자, 박 판사는 정신과 교수에게 ‘심리적 부검’을 의뢰, 당사자가 업무상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취지의 감정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세상물정을 몰라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사법부 불신에 대한 반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판사들의 일상까지 법과 사람 사이의 고민들을 법정 사건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박형남 지음/후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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