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춘대유희 백년광대’ 연출·안무감독 3인 인터뷰
연출 안경모, 안무 김윤수·이규운 ‘정동극장예술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유료공연 ‘소춘대유희’ 복원
승무·소리·줄타기 등에 미디어아트 더한 악가무희극
“당대 관객과 교감한 전통의 현대화 아닌 현재화”
조명 꺼진 무대에도, 관객이 떠난 객석에도, 텅 빈 극장을 지키는 ‘누군가’는 있었다. “‘광대의 넋’이 살아있다고 해요. 갑작스런 소동이 있거나,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면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극장에 귀신이 들어와 장난치는 것 같다고요. (웃음)”(안경모 연출) 100년 동안 살아온 귀신들, 한 시대를 살아온 ‘선배 예인’들과 그들이 만든 ‘역사의 순간’들이 무대에서 복원됐다. 최근 막을 내린 ‘소춘대유희 백년광대’를 통해서다.
작품의 출발은 120년 전이다. 1902년 우리나라의 첫 근대식 극장인 협률사.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의 즉위 40년을 축하하기 위한 성대한 공연을 열기 위해 조선팔도의 예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곳에 모인 악(樂), 가(歌), 무(舞), 희(戱), 극(劇)에 통달한 당대 스타 예인들은 무려 170여명. 그 무렵 호열자(콜레라)가 창궐해 공연은 무기한 연기됐다. 그러다 막을 올린 최초의 근대식 유료공연이 바로 ‘소춘대유희’였다. ‘평행이론’처럼 같은 일이 지금도 벌어졌다. 협률사에서 원각사로 이름을 바꾼 근대식 극장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국립정동극장. 이 공연은 ‘정동’의 과거이자, 현재였고, 미래였다.
최근 국립정동극장에서 만난 안경모 연출과 김윤수, 이규운 안무감독은 “관객들이 마음을 담아 박수를 치고 흥을 일으켜줬다. 그게 참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소춘대유희 백년광대’는 지난 5월 ‘국립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된 ‘국립정동극장’과 새로 생긴 극장의 예술단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긴 작품이다. 세 사람은 전통예술의 꽃을 피우며 동시대 트렌드를 담은 무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국립정동극장의 방향성을 작품에 녹였다. 이규운 감독(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지도위원)은 “정동극장 예술단을 다른 극장과 차별화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오래 고민한 끝에 연희를 동시대 예술로 창작하는 작품을 하자고 생각해 ‘소춘대유희 백년광대’가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은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다. ‘기원의식’을 담은 한국무용 승무로 시작해 재담, 소리, 줄타기, 바라춤 등 다양한 전통예술이 무대에서 병렬식으로 나열된다. 안 연출가는 “지금의 현대 관객에게 단순한 버라이어티쇼는 매혹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러한 다채로운 요소를 극적인 전개 과정으로 묶어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지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전통예술을 아우른 공연인 만큼 볼거리가 많다. 1시간 40분의 러닝타임 동안 30~60분 공연이 적합한 각각의 춤, 소리, 놀이 등의 장르를 3~4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각 장르의 역사를 고민”했고, ‘장면의 질’을 놓치지 않았다.
“‘소춘대유희 백년광대’는 정동극장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1시간 40분짜리 예고편이에요. 시간이 지나 이 작품은 또 다른 원형이 될 거라고 봐요. 이 안에서 부분적으로 해체해 승무, 바라춤, 소리 등 작품 시간을 증폭시켜 새로운 공연들이 나올 수도 있죠.” (김윤수)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도전과 실험을 피하지 않았다. 타악 연주자, 무용수들이 주종목 외에도 연기까지 겸하는 등 경계를 넘었다. 전통의 원형을 뛰어넘는 파격도 연출됐다. 상모놀이 때 쓰는 초리를 머리가 아닌 손으로 돌리는 시도였다. 이 감독은 “초리의 동양철학과 원형의 미를 잘 나타낼 수 있도록 머리로 돌리는 것처럼 손으로 구현했다”고 말했다. 극장 공연에서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소춘대유희 백년광대’가 처음이다. 물론 걱정과 우려도 있었다. 이 감독은 “그동안 이어온 많은 선생님들의 원형을 함부로 확장한 것은 아닐까 우려도 됐다”고 말했다.
“‘소춘대유희 백년광대’ 안에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3~4개월 짜리 짧은 여정(연습기간)에 대한 고민, 다양한 전통예술 요소를 나열하며 1시간 40분이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시간에 대한 고민, 1초 단위로 드러나는 원형에 대한 고민, 그러면서도 미래를 제시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김윤수)
고민이 깊었던 만큼 매장면 엄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었다. 안 연출가는 “기본기에 충실하고, 그 이상을 뛰어넘어 새로움을 추구하면 재주가 된다”고 말했다.
“본질을 놓치는 순간 우리는 다 망한다, 뿌리는 단단히 딛고, 꽃과 가지는 풍성하고 다채롭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선배 예인들에 대한 예의고, 당대 관객과 만나는 과정에서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요.” (안경모)
100여년 전 빛났던 예인들의 예술은 현재의 기술을 통해 눈부시게 빛났다. 작품은 그야말로 가장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 만났다. 명창 이동백과 당대 예인들이 홀로그램, 딥페이크 등을 첨단 기술로 복원됐고, 흥미로운 역사의 순간들이 되살아났다. 안 연출가는 “광대의 넋을 기술로 재생기키는 것. 그것 역시 현재화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까지 예인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앞 부분에 판을 깔아온 거죠. 그 과정은 어찌 보면 현재의 정동극장의 예술단이 붕 떠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배들이 켜켜이 퇴적층을 쌓아온 위에 딛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어요.” (안경모)
‘소춘대유희 백년광대’는 그 어느 작품보다 과감하게 시도했고, 지금에 맞춰 전통을 재해석했다. 연출, 구성, 안무 요소 곳곳에 ‘전통의 현대화’라고 이야기할 만한 다양한 장치가 담겼다. 안 연출가는 “이젠 전통의 현대화보다는 전통의 현재화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통예술은 ‘차원을 툭 이동시켜주는 세계’와 같아요. 명무가 손 한 자락 툭 치면 세상이 출렁인다 하는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신명과 흥이 내 안의 무의식 세계에 있던 것을 꺼내 뒤바꿔놓고 세상을 이동시키는 힘이죠. 전통의 현재화라는 것은 전통의 이러한 힘을 당대 관객과 나누는 과정이에요. 그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흥미롭게 꺼내고, 관성적으로 익숙했던 것을 새롭게 보게 만들면 전통을 발견하는 거죠.”(안경모)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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