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도중 성폭력 피해자 극단적 선택
1심 징역 4년→항소심 9년 형량 가중
대법원, “양형조건 추가 심리 않고 선고 잘못”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성폭행 범행 피해자가 재판 도중 극단적 선택을 했더라도, 실제 범행 때문인지 따지지 않고 곧바로 형량을 가중해선 안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상 강간등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피해자 B씨와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교제 중이던 A씨는 2019년 술에 취한 B씨를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하고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A씨는 여자친구였던 피해자를 간음하고도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피해자에게 거짓말 등으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주었고, A씨의 가족들도 피해자에게 A씨에겐 잘못이 없다는 취지로 연락하는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와 검찰은 모두 항소했고, A씨는 ‘B씨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고, 거부의사를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항소심 선고 직전 B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B씨의 사망 후 B씨의 대리인은 사망진단서와 “A씨의 2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으므로 A씨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의견서를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항소심은 B씨 사망 후 추가 기일을 열지 않고, A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A씨로부터 이 사건 범행을 당함으로써 겪게 된 신체적·정신적 고통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 사망이 범행으로 인한 것인지 추가 심리를 하지 않고 재판을 마친 것은 잘못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 사실 외에는 1심판결과 항소심판결 사이에 별다른 양형조건의 변경이 보이지 않는다”며 “공판과정에서 피해자의 사망과 이 사건 범행의 관련성에 대해 어떤 공방도 이뤄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과 이 사건 범행의 관련성 등에 관해 A씨의 의견을 듣는 등 피고인에게 방어의 기회를 주기 위해 변론을 재개해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한 새로운 양형조건에 관해 추가로 심리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pooh@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