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일본에서는 노후에 연금만으로 살기에 큰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 고베에서 대기업에서 은퇴한 60대 자원봉사자로부터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는 매달 받는 연금이 250만원 정도로, 부부가 사는 데 큰 불편이 없다고 했다. 외국인을 도와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삶의 큰 보람이라고 말해 부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일본 여당의 새 총재로 기시다 후미오가 등장한 지난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 간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가 ‘연금제도’였다. 공적연금의 금액이 계속 줄고, 수령 개시 연령이 높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퇴자는 물론 중장년층에서도 연금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노동인구는 감소하고, 고령자가 증가하는 게 기본 배경이다. 전체 인구에서 다섯 명 중 한 명꼴인 2621만명(20.7%, 2019년 기준)이 70세 이상이다.
지난 2020년 6월 공포된 연금제도개정법이 반년 뒤인 2022년 4월부터 시행된다. 여성과 고령자의 취업 촉진을 위해 후생연금보험과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연금 수령시기의 선택지를 넓히는 게 골자다. 연금 수령 연령을 늦추면(최고 70세에서 75세로) 금액이 늘어나는 구조다.
현행법에서 공적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은 65세가 기본이다. 대상자들은 60~70세 사이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내년 4월부터는 60세에서 75세 사이의 원하는 나이에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바뀐다. 연금 개시 시점을 66세 이후로 높이는 ‘지연 수령’의 경우 1개월 늦출 때마다 월 0.7%씩 금액이 늘어난다. 70세부터 받을 경우 65세보다 매달 42%, 75세부터는 84% 증가한다.
65세보다 일찍 받는 ‘조기 수령’의 경우 연금액은 현재 월 0.5%씩 감액된다. 내년부터는 감액률이 0.4%로 축소된다. 60세부터 수령하면 65세부터 받는 것보다 24% 줄어든다. 새 연금제도 아래 수령자들이 65세보다 늦춰 연금을 받는 것이 유리할까.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65세부터 연금(월 12만5000엔 기준)을 수령하는 사람이 70세로 늦출 경우 총액의 손익분기점은 82세로 분석됐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정도가 새로 도입하는 연금제도에 반발하고 있다. 65세부터는 일하지 않고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연금 개편이 지급 연령을 70세로 높이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부터 ‘개정 고령자 고용 안정법’이 이미 시행에 들어가 근로자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하는 시스템은 갖춰졌다.
일본에서 연금제도가 개편될 때마다 액수가 줄고, 지급 연령이 높아졌다. 그래서 장래가 불투명한 공적연금에 노후를 맡길 수 없다고 불안해 하는 국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60대 초부터 연금으로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교수도 정년 퇴직 후 받는 연금이 월 15만엔(약 160만원) 정도다. 일반인들이 수익형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 나서고, 개인연금 가입이 느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노후 대비는 이제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됐다. 장수가 축복만은 아닌 듯하다.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