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자란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액면 그대로 풀이하자면 ‘남쪽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자 탱자가 열렸다’는 뜻이다. 귤나무와 탱자나무는 잎이 비슷하지만 열매의 맛은 다른데 그 이유는 재배환경, 즉 나무가 뿌리내린 땅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귤화위지의 핵심이다. 아마 농작물을 재배해본 사람이라면 토양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13년 국회에서 ‘흙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2015년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해마다 3월 11일이 법정기념일인 ‘흙의 날’로 지정됐다. 3월은 우주를 구성하는 천(天)·지(地)·인(人) ‘3원’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상농(上農)·후농(厚農)·편농(便農), 즉 농업이 존중받고 농민이 잘살고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3농’, 그리고 농업·농촌·농민의 ‘3농’을 의미한다. 11일은 ‘흙 토(土)’자를 풀어쓴 ‘십(十)’과 ‘일(一)’에서 가져왔다. 이때가 영농을 시작하는 시기라는 점도 고려했다.
이렇듯 흙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함으로써 농업의 근간이 되는 흙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토양이 크게 훼손되고 국민도 흙의 소중함을 많이 잊었다. 토양이 비옥하지 못하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다. 흙이 건강해야 우리 땅에 사는 국민에게 안전한 양질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농산물 수급 안정의 출발점이 바로 흙이고 토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뿌리부터 열매까지 모든 것을 조리해서 먹는다. 산에서 나는 나무열매부터 땅속 깊이 파고든 뿌리까지, 자신이 자란 땅의 농산물을 먹고 살아가면서 지역농산물의 정체성이 곧 지역주민의 정체성이 됐다. 전남 나주 하면 배, 경북 상주 하면 곶감, 강원도 하면 감자가 떠오르는 식이다.
농산물을 활용한 음식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우리 전통음식은 맛이 다채롭고 조리법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오래전부터 집집이 발효식품인 김치와 된장·간장·고추장 등을 직접 담가 먹었다. 지역마다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맛, 지역 고유의 맛을 지닌 김치와 장류가 존재한다. 전남 지역에서는 고들빼기김치와 갓김치를 즐겨 먹었고, 강원도에서는 명태나 오징어 등 수산물을 넣은 김치를 먹었다. 이러한 다양성이 우리 국민들을 먹이고 살리고 지금에 이르게 했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도 창의성이 뛰어난 민족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인의 창의성 또한 한국음식과 관련이 깊다. 고른 영양소는 뇌건강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탄생한 다양한 맛과 식감, 이미지는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켜 저마다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가 면적이나 인구는 작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앞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창의성에 있다. 창의성은 지식정보시대의 경쟁력이며, 대한민국 창의성의 기반은 바로 한국음식에 있다. 한국만의 음식문화, 한국의 맛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 곧 한국의 창의성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 중 땅에서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다. 땅에서 자란 농산물의 맛은 토양의 맛이다. 그래서 한국음식의 맛은 한국토양의 맛이다. 흙에서 태어난 농산물의 맛, 지역의 토양에서 자란 로컬푸드의 맛을 기억해야 평생 우리 농산물을 즐길 수 있고 소중함과 가치를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국음식에 있음을 잊지 말자.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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