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황주변씨 망암종가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학문이 장성만 못하다)’이라 했다. 장성의 학문은 실천과 직접 연결됐고, 성현들의 인문학적 가르침 외에 이공계 자연과학을 두루 익혔기에 뚜렷한 강점을 보인다. ‘인문, 부국, 강병의 실질적 힘으로서의 학문’이 장성에서 일어난 것이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을 겸비해 나라를 구한 사람들은 장성 황주변씨 망암종가의 변이중(1546~1611)가(家)이다. 또 목숨 바친 충절로 노블레스 오블리쥬와 사랑을 지켰다.
남도일보와 전남종가회에 따르면, 변이중은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성리학과 경학에 밝아 문과 급제했으며 이조좌랑, 황해·평안도 도사, 선산부사 등을 역임하고 망암종가를 열었다.
임진왜란 때 소모사가 되어 군비를 수습했으며, 조도사로서 전라도에서 병력·군량·무기 등을 찾아 조달하는 중책을 맡았다.
전라도 일대에서 군비를 수습하던 변이중의 사촌동생 변윤중은 집안의 양곡과 마초, 재물을 모아 기부했다고 한다.
변이중은 지난한 연구개발로 만든 화차 300량을 임란 당시 행주산성을 지키던 순찰사 권율 장군에게 전달해 행주대첩 승리에 기여했다.
후손들은 변이중이 남긴 문집 ‘망암집’에 수록된 총통화전도설, 화차도설 등을 근거로 화차, 신기전, 총통 등 당시 무기 18종을 복원해 장성군 장안리에 ‘시징당’을 세우고 전시하고 있다.
변이중의 사촌동생인 변윤중(?~1597)은 정유재란을 맞아 가솔을 포함 200여 의병군을 모아 장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중과부적의 상황에 몰려 황룡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그의 부인 성씨, 남편인 종손대신 며느리 서씨도 투신을 택했다. 조정은 나중에 세 사람을 각각 충신, 열부, 효부로 칭하며 ‘삼강정려’를 하사했다.
변이중의 아들 15세 변경윤(1574~1623)은 문과 급제, 교서관저작을 역임하고 ‘자하문집’을 남겼다. 그는 광해군 원년에 당파에 따른 기강 문란, 국가 재정, 민생 파탄 등을 논하고 이를 시정할 것을 상소했다.
16세 변명익(1610~1660)은 병자호란때 임금 수레를 호종했다. 소현세자와 사돈을 맺었고, 문집 ‘창암유고’를 남겼다. 황해도 황주를 본관으로 하는 황주변씨의 시조는 고려에 귀화한 변려이다. 9세 변정이 장성에 은거해 황주변씨의 장성 입향조가 된다. 변이중은 14세손이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