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대중화’ 사명 아래 2015년 정가악회 유닛 결성
국악계에서도 낯선 서도민요ㆍ황해도 굿의 만남
‘접신록’, ‘작두록’으로 불리는 ‘요즘 국악’의 대명사
경쾌한 음악ㆍ간결한 리듬ㆍ세련된 무대
“위로와 공감이 키워드…이 시대의 정신 담은 음악”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늘로 854번째 듣고 있어요. 내일 쯤엔 접신 가능할 듯.” (네이버 온스테이지 악단광칠 ‘영정거리’ 영상에 달린 댓글)
질병과 액운을 몰아내는 ‘영정거리’(1집 ‘악단광칠’ 수록곡)로 나온 세 명의 보컬. 자태부터 심싱치 않다. 선글래스에 족두리, 작은 갓을 삐딱하게 머리에 얹으니 금방이라도 주술을 욀 것 같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존재, “성별이 없는 무녀”는 의상과 간주 구간에 등장하는 안무로 상징했다. 힘차게 달려가는 국악기는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 경쾌한 음악, 간결한 리듬, 매력적인 음색, 군더더기 없는 무대…. 악단광칠은 세련됐고, 감각적이다.
등장부터 생경했다. 국악계에서도 낯선 서도민요와 황해도 굿의 조화였다. “생경한 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데다 쇠 울림의 강렬한 사운드, 무녀의 퍼포먼스 등 대중음악적으로 풀어낸다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어요.”(‘보컬’ 홍옥)
악단광칠은 태생부터 달랐다. ‘재밌어서’, ‘신기해서’ 시작한 장르의 융복합이 아니었다. 철저한 전략과 작전 위에 태어났다. “국악이 소외된 시절부터 우리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예술가를 고민한 끝에 악단광칠이 나오게 됐어요. 우리 음악으로 자립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보자는 노력 끝엔 생존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홍옥) 국악단체인 정가악회의 유닛밴드로 결성했고, 때마침 그 해가 ‘광복70주년’(2015년)이라 ‘광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통과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소위 말하는 ‘요즘 국악’의 대표주자. 새 노래와 공연(7월 9일,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준비에 한창인 악단광칠을 최근 정가악회 연습실에서 만났다.
▶ ‘국악 대중화’ 기치 아래 탄생…전통의 한계 넘은 실험=악단광칠의 음악과 그룹의 구성은 독특하다. 전통을 기반으로 대중음악을 선보이는 여타 팀과는 또 다르다. 이날치가 판소리와 서양 악기의 조화로 새로운 음악세계를 연 반면 악단광칠은 대금·아쟁·가야금 같은 전통악기에 낯선 무가와 서도민요를 실어 록 음악을 들려준다. 다른 서양 악기나 현대화된 창법을 빌리지 않았다.
“정가악회는 전통음악을 가지고 대중화하려는 시도를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어요. 고집스럽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을 때 진짜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그것이 축적돼야 하지 않겠냐는 입장에서 국악기를 고수하는 것 있고, 그 안에서 접점을 찾아가고 있어요.”(‘대금’ 김약대 단장) “정가악회가 추구한 전통의 현대화는 무언가를 가져와 융합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전통을 소재로 대중음악을 만드는 악기가 피아노, 바이올린이 아닌 아쟁, 대금, 피리인 거죠. ‘국악의 현대화’라는 가장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해요.”(‘아쟁’ 그레이스 박)
전통 악기들은 기타, 드럼과 같은 익숙한 서양악기의 소리를 낸다. 2017년 팀에 합류한 선우바라바라바라밤(타악)은 “정식 입단 전 ‘영정거리’를 듣고 연습하는데, 드럼에 있는 사운드인 줄 알았다”며 “알고 보니 전통악기를 후려 패는 음악이었다. 알고 나서도 신기하고 연주를 하면서도 해내는 내 자신이 멋있게 느껴진다”고 말하며 웃었다.
국악기로 ‘국악 같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고, 보다 ‘대중적인 소리’를 내기 위해 아홉 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기준과 한계를 넘어야 했다. 서양 악기와 국악이 접목되는 것과 전통악기로 대중음악, 현대의 음악을 선보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전통악기가 가진 특수성, 그 안에서 오랜 시간 몸담은 연주자들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을 넘는 것은 저마다의 과제였다.
“습관적으로 해오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국악은 대체로 남도 계면조의 슬픈 음악이고, 연주자들도 그러한 연주 습관에 젖어 있어요. 모든 악기라는 것이 어떤 평균율을 내도록 만들어진 건데, 여기에서 벗어나 강렬한 밴드의 사운드를 구현해야 했어요. 한 번도 낸 적 없는 소리와 연주를 하는 거예요. 스스로의 사고와 상황을 깨고 나니, 전통악기가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나아가 어디가 한계인지, 여기가 끝인지, 더 깨질 것이 남아있는지 고민하게 되고요.” (그레이스 박)
조현법을 바꾼 아쟁은 베이스와 같은 깊은 저음을 연주하고, 타악은 전통 장단을 넘어 “그루브를 느낄 수 있는 ‘대중적 리듬’”(선우바라)을 연구했다. “대중음악적인 창법과 가사를 전달하는 개념”(홍옥)을 배우는 것도 새로운 시도였다.
김 단장은 “악단광칠의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국악은 필요악이었다”고 말했다. “버리지 않아야 할 것도 국악이고, 버려야 할 것도 국악이었어요. 악단광칠 전에는 내가 하는 악기가 대중적인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은 대중적인 소리를 고민하면서도 그 안에 국악을 어떻게 넣을지 다양한 방식을 떠올리게 돼요.”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지난 6년간의 고민과 연구는 악단광칠을 현재의 음악세계로 이끌었다. 김 단장은 “리듬, 악기, 편성의 변화로 대중음악과의 접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국악이 아닌 지금의 음악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리듬을 고민”했고, “기계의 힘을 빌리는 밴드 사운드를 국악기로 연주”했다. 그 안엔 악단광칠 아홉 명의 색깔이 고스란히 담긴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수를 놓는 장인들의 손길처럼 멤버들이 찾은 해답이 곳곳에 묻어난다. 선우바라는 “우리 안에 아홉 명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과 취향이 있다”며 “아홉 개의 색에서 나오는 다양함이 합쳐져 지금에 온 것 같다”고 했다.
▶ 쉽게 풀어낸 무가…“노랫말로 위로와 공감, 일탈 안기는 공연”=악단광칠의 음악은 공독창작의 결과다. 하나의 노래가 완성되기까지 멤버들은 의견 조율의 시간을 가지며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 곡이 만들어진 후엔 음감회를 열고 피드백을 받는다. 악단광칠 아홉 명의 멤버를 비롯해 정가악회 일원들이 머리를 맞대 이들의 색깔을 만들었다. 홍옥은 “악단광칠의 음악은 악단광칠 아홉 명만의 팀이 아닌 (정가악회) 모두의 결과”라고 말했다.
악단광칠의 강점은 완전히 생소한 무가를 쉽고 재밌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멤버들은 악단광칠의 음악적 변곡점을 2집 ‘인생 꽃 같네’(2020년 7월 발매)로 꼽는다. 이때부터 노랫말을 직접 쓰면서 악단광칠이 전하려 하는 메시지를 고민했다. 경쾌한 사운드에 감춰진 낯선 ‘황해도 굿’에는 현대인의 모습을 녹여낸 노랫말로 공감대를 쌓았다.
“악단광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위로와 공감이에요. 치유를 들려주기 위해 일탈을 선사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고요. 무대 위 보컬은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처럼 굿판에서 들어왔다는 느낌을 주고, 그것을 이미지화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어 온 거죠. 그래서 때로는 구세대의 사운드가 필요하기도 했고요. 메시지를 담는 과정에서 음악도 풍성해진 부분이 있어요.” (김약대 단장)
음악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새로운 시도는 무대 위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보컬들의 몫이었다. 콘셉트를 잡아가는 과정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초창기엔 악단광칠의 콘셉트가 명확하지 않았어요. 정가악회 기획자들조차 ‘도대체 너네가 하고 싶은 음악이 뭐냐’, ‘뭘 추구하는 거냐’고 할 정도였죠. 대중음악 가수처럼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전달하는 에티튜드가 부족했어요. 굿 음악을 하니 보컬은 무녀가 돼야 하는 줄 알았어요. (웃음) 그동안 감상하는 음악의 연주자로 무대 위에 서는 것은 많이 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어렵더라고요.” (홍옥)
무턱대고 홍대 거리로 나가 버스킹을 시도하고, 어느 시골의 마을회관을 찾아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공연을 해본 것은 악단광칠의 현재를 만든 자양분이다. “공연이 없을 땐 길거리로 나가 무조건 관객을 만나자고 마음 먹었어요. 관객을 한 번 만나고 나면 저희가 달라지고, 성장하더라고요. 저희가 하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히 있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것들이 쌓이며 악단광칠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레이스 박)
“악단광칠의 공연에선 관객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연주를 하면서도 관객들이 어떻게 즐기는지, 어디에서 좋아하는지 보이거든요. 그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직관적으로 좋은 것을 최선으로 취하게 돼요.” (선우바라)
▶ 완전히 깨부순 고정관념…“전통을 소재로 이 시대의 정신을 꺼낼 뿐”=전통음악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는 통념과 편견은 악단광칠을 빗겨간다. 유례 없었던 시도와 실험은 대중이 먼저 알아봤다. 광복 70여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북한의 옛 음악을 대중은 ‘접신록’ ‘작두록’이라 부르며 열광했고, 해외에선 ‘코리안 샤머닉 펑크’(2019년 세계 음악축제 워맥스에서 악단광칠을 소개하며 지칭한 장르)로 부른다. 더이상 장르와 경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그저 악단광칠만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그것은 퓨전도 아니에요. 단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각자의 악기와 목소리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신을 꺼내고 있는 거예요. 전통적인 악기와 소재를 가지고,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거죠. 국악이기도 하지만, 현대에 있는 음악, 이 시대에 있는 음악이에요.” (그레이스 박)
“우리 역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이 안에서 하는 음악은 시대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전통음악이라 부르는 음악들도 그 때의 시대상과 모습을 대변했고요. 악단광칠의 음악도 그래요. 요즘 사람들과 음악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이 시대를 함께 하고 대변하는 뮤지션으로, 나중엔 우리가 전통음악이 되지 않을까요.” (선우바라)
악단광칠의 길은 흔들림이 없다. 묵묵히 ‘오늘의 음악’을 만들고, ‘현재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창 작업 중인 신곡 역시 팬데믹 시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애쓰면서 살아가는 날들과 이겨내려는 마음과 시간을 음악”(홍옥)으로 풀어냈다. “음악을 만들 때 아홉 명의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늘 필요해요. 음악을 통해 저희가 하나가 되는 과정을 늘 만나요. 악단광칠의 음악으로 세대, 국적이 달라도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홍옥) 그 과정에서 굿과 민요는 도구로서 악단광칠의 음악을 만든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한계를 넘는 일도 일상처럼 이어진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창작을 하고, 그것의 방향성을 확장하면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워지려면 그 누구보다 전통음악을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전통음악에서의 경험이 악단광칠로 이어진 것처럼, 악단광칠에서의 음악적 경험이 전통음악에 차용될 수도 있다고 봐요. 그 때서야 국악의 영역에서 또 하나의 대중화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과정에서 어떤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욕심은 없어요. 다만 이런 활동이 대중적으로 다가가고, 악단광칠의 음악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음악,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귀에 꽂는 3~4분이라도 필요한 음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요. 그리고 그런 팀들과 모두의 마음과 문화가 모여 우리가 부르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음악을 지칭하는 카테고리가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약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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