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콘텐츠산업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맹렬히 굴려나가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는 나라가 콘텐츠 강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과거에도 서양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지던 시절이 있었다. 조선은 근대화·글로벌화에서 뒤져 큰 대가를 치렀다. 문화 후진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흥망까지 걸려 있는 국면이었다.
본격적인 시기는 영국이 중국과 1~2차 아편전쟁(1840년과 1860년)에 걸쳐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빼앗아가면서다. 이 때는 자신 능력의 상대평가가 중요했다. 조선의 조정은 지피지기를 할 여유가 없었다.
반면, 일본은 그 영국배와 1853년 도쿄만에 출현한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黑船) 규모와 무기·병력 등을 보니 자체 병력으로는 대적할 수가 없었다.
기도 다카요시, 다카스키 신사쿠,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일본에서 선각자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요시다 쇼인이 조슈번(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세운 학원 ‘쇼카손주쿠’로 모여들었다. 영국과 미국에 의해 빼앗긴 영토와 조차권은 동양의 각국에서 보상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일본 보수우익사상이 구체적인 얼굴을 갖추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부터 오키나와와 사할린 등 영토를 확장하고 정한론(征韓論)도 나왔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다크 히어로’로 추앙받는 사카모도 료마는 조슈번과,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가 있는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의 동맹(샷조동맹)을 성사시켜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면서 막부체제를 타도하고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었다.
이런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렵다. 서양을 받아들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반대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서양과는 제도와 종교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위정척사와 쇄국, 중국은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에서의 중체서용 등이 서구를 모델로 하는 개혁을 힘들게 했다.
일본은 조금 달랐다. 한국이 서양을 닮으면 안된다고 했다면, 일본은 존왕양이와 화혼양재, 탈아입구로 서양이 오랑캐의 문물이지만 받아들여 강대해지자는 식이었다. 물론 막부는 쇄국정책을 썼지만, 결국 마지막 쇼군 도쿠카와 요시노부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질서있는 막부의 퇴각은 유신 개혁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무라이는 육군이어서 해군 확장은 필수였다. 사카모도 료마의 롤모델인 가쓰 가이슈는 일본이 살길은 해군이라며 고베에 해군학교를 만들었다. 그것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를 군신(軍神)으로 만든 기반이었다. 사쓰마번의 오쿠보 도시미치는 정치행정의 근대화, 사이고 다카모리는 군대의 근대화를 각각 이끌었다.
당시 일본이 서양을 이해하는 주된 통로는 네덜란드였다. 조선이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 해외 정세를 막연하게 파악했다면,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시절부터 통상에 능한 네덜란드를 통해 해외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막연하게 대충 아는 것과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아는 것의 차이는 매우 컸다. 일본에서는 네덜란드를 통해 전래된 정보와 의학, 과학을 난학(蘭學)이라 부르며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다.
네덜란드에는 유럽에서 종교박해를 피해온 프랑스 위그노 등 신교도들과 유대인이 많았다. 통상과 무역의 귀재들인 그들은 16세기부터 이미 해상으로 진출해 인도네시아 자바섬 ,대만, 일본 나가사키까지 장사를 하러왔다. 그들은 포교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장사만 하겠다고 하자 일본은 에도시대인 17세기에 나가사키에 인공섬 데지마(出島)를 만들어 상관(商館)을 지어주며, 그들로부터 구미 정보를 제공받았다.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고 내린 쇄국이지만, 일본은 상대를 제대로 본 셈이다. 그 결과는 얼마나 큰 차이를 낳았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글로벌화의 2차전이다. 문화전쟁은 총, 칼로 하는 게 아니라 질 높고 세련된 문화를 통한 세계인의 공감으로 한다. 여기서도 상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우리의 가치를 세계인의 마음속에 전파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미 전 세계에 ‘아미’라는 문화소비자를 확보했다. BTS가 빌보드 ‘핫100’ 4주 연속 1위를 한 원동력이다. 역사상 두 번째 맞는 글로벌 웨이브는 우리가 더욱 정교한 문화콘텐츠로 세계사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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