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진보를 멈출 수는 없지만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 한다. (중략) 인간은 자연의 모든 것을 잘 이용해왔다. 그러나 신(神)은 여전히 날씨를 다스리고 있다.” 이 글귀는 ‘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의 저자 에릭 두르슈미트가 책 말미에서 강조한 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연에 대항하고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도전해왔지만 자연과 관계 속에서 허락된 이상의 진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날고 긴다 한들 누구도 예외는 없다. 반복적인 일상이든,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이든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곧 자연의 허락하에 인간이 내린 결정과 행위의 결과인 셈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전에 없이 가파른 진보를 이룩하며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균형점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는 ‘경험해본 적 없는’ 기상재해를 해마다 고통스럽게 겪으며 점점 뜨거워지는 대지와 하늘을 고스란히 실감하고 있다.

수십년간 관측한 날씨의 통계조차 계절의 길이가 바뀌었고 더운 낮과 추운 밤은 더 격렬해졌음을 증명한다. 누군가의 살 곳은 점점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누군가는 마실 물을 구하려고 점점 더 먼 웅덩이를 찾아나서며, 누군가는 빙산 한 조각에 겨우 올라앉은 탈진한 북극곰을 구조하러 나선다. 균형, 소통, 배려에 등돌린 채 일방적인 진보를 밀어붙이는 인간을 향해 대지와 하늘은 경고의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인류의 발전, 아니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자연의 경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 가득했지만 해마다 ‘역대 가장 더운 ○월’을, ‘4월 중순 한파주의보’를 겪으면서도 아직 절박함은 흐릿하다. 탄소중립으로 대표되는 적극적인 기후행동이 이제야 막 첫걸음을 떼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온난화의 억제는 무너진 균형점을 찾기 위한 목표이며, 전 지구적인 탄소중립 실현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류의 약속이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가장 효과적이지만 고통스러운 노력은 단연 화석연료로부터 독립일 것이다. 가시적인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서는 현재의 에너지·산업구조의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결국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의 행동과 모든 산업활동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과 불편을 감내하는 ‘기후행동의 시작’은 인류가 자연에 보내는 사과이자 화해의 청(請)이다. 조금 덜 편리하고, 덜 저렴한 생활을 기꺼이 체화함으로써 우리는 지속적인 행동을 이어 나가야 한다. 이로써 대지·하늘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삶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될 것이다.

“순천자흥 역천자망(順天者興 逆天者亡).”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흥하고, 그에 반하는 자는 망한다’는 맹자(孟子)의 말이다. 2300여년 전 세상을 향한 당부의 말이었지만 온전히 지금의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통찰이다. 매일 하늘을 바라보고 그 변화에 귀기울이는 자리에 서니 더욱 그 깊이와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금언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자연과 하늘의 이치에 따름으로써 인류는 미래를 바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자연에 더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진심을 담아 화해의 청을 보내자.

박광석 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