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용어에서 민주주의 중심이 된 상식
상대방 '대중의 적' 모는 도구로 쓰여
객관적·보편적 진리 아닌 상황따라 달라
英명예혁명 후, 분열·증오 대안으로 등장
‘스펙테이터’ 역할..상식이 판단 기준으로
페인의 팸플릿 ‘상식’ 미 독립에 도화선
‘인간은 평등’,공화국 세계관 불어넣어
공통기반 취약한 현대사회, 상식 힘 여전
양면성 인식, 상식 밖 생각하기 필요
‘뜨거운 것을 만지면 손을 덴다’‘‘2더하기 2는 4다’‘청색은 검정과 다르다’….이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이건 어떤가? ‘가족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으로 이뤄진 부모와 그들의 직계 후손으로 구성된다’. 지금 가족의 개념은 이렇게 좁지 않다. ‘문화체계로서의 상식’은 시대와 집단에 따라 다르다.
상식은 또한 민주주의의 중심이기도 하다. 다수의 원칙은 상식이다. 이런 상식은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논리나 이성으로 문제를 풀어가지 못할 때, 상식을 들고 나오면 경쟁자는 상식의 적, 대중의 적이 되고 만다. 상식은 그 자체로 증거나 토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리값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좌파나 우파 어느쪽이든 쉽게 이를 내세우는 이유다.
역사학자 소피아 로젠펠드는 ‘상식은 어쩌다 포퓰리즘이 되었는가’(부글)에서 17세기 영국 명예혁명부터 지금까지 350년에 걸쳐 상식이 어떻게 정치화 과정을 밟았는지 보여준다.
상식(common sense)은 애초에 과학 용어였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5가지 기본적인 감각, 즉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시각과 청각, 미각, 후각, 촉각뿐 만 아니라 이 모든 감각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일종의 ‘공통적인 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이 공통의 감각의 기능은 5가지 감각들이 받아들인 인상들을 서로 비교 통합하면서 이성과 별도로 감각의 대상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공통감각은 점차 해부학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인식능력을 뜻하는 의미로 확장되면서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
상식의 역사에서 영국은 사실상 그 출발점에 놓인다. 17세기 명예혁명을 거친 영국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난무했고, 분열과 증오, 극단주의를 넘어 이를 하나로 통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때 상식이 합리적 기준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잡지 ‘스펙테이터’는 정중하고 양식있는 태도, 곧 상식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발행인이자 정치인인 조지프 애디슨은 휘그당이나 토리당에 속하지 않고 격한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적인 집단의 상식,즉 기본적인 진리를 놓고 건전하게 판단하고 동의할 줄 아는 능력에서 정치적 치유의 가능성을 봤다.
보통 사람들이 보통 상황에서 느끼는 보통 감각이 종교와 윤리, 미학적 취향, 정의,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두루 신뢰할 만한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다. 1720년대 초에 오면, 영국의 상식은 뚜렷이 인식되는 하나의 관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보수주의 철학자들은 회의주의와 무신론을 타파하기 위해 상식을 동원했고, 프로테스탄트 지식인들은 상식을 기존 권위에 도전하는 수단으로 썼다.
런던에서 출발한 상식이 혁명을 일으킨 곳은 1776년 필라델피아였다. 그 도화선은 토마스 페인의 유명한 팸플릿 ‘상식’이다. 영국에서 코르셋 가게를 운영하다 파산하고 식민지로 건너온 페인은 식민지 급진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책자의 초안을 잡기 시작한다. 페인은 독립의 대의를 넘어 통일될 미국은 국왕이나 귀족이 없는 공화국이 돼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또 국가의 정체성 뿐만아니라 집단적인 상식이 시대를 지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으로 발표된 이 팸플릿은 출판계에 신드롬을 일으켰고, 식민지 주민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아주 짧은 시간안에, 모두가 왕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관념 대신 새로운 세계관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페인의 ‘상식’은 숱한 논쟁을 일으켰는데, 상식의 소유권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투쟁도 거셌다. 각 당은 자신들이 진정하고 믿을 만하고 단 하나뿐인 민중의 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비슷한 주장을 일축했다.
상식은 다시 서유럽의 주요도시에 다양한 형태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식은 당시 신엘리트들의 증가와 문맹률 하락,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이해 등과 함께 18세기 마지막 몇 십 년 동안 보통사람들을 정치 투쟁의 장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복잡성이 높아진 현대사회에서 상식은 공통기반이 약화하고 있다. 분야별 전문성이 높아지고 다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시대 공적 영역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상식은 민주주의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규범으로서 수사적 파워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상식의 양면성을 지적하면서 상식 밖에서 생각해볼 것을 조언한다.
“자유주의적 입헌주의와 전문지식과 긴장관계에 있는 상식은 민주주의라는 동전의 보다 집단적인 이면이다. 동시에 상식은 비공식적인 규제 체제와 정치적 권위로서 언제나 민주적인 이상을 훼손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일부 개인들이 의식적으로라도 상식의 밖에 서서, 상식이 작동하는 복잡하고 막강한 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상식은 어쩌다 포퓰리즘 되었는가/소피아 로젠펠드 지음, 정명진 옮김/부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