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아이의 등록될 권리 보장은 국가의 의무” ①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

출생신고 제때 안 해 2만명 과태료…“막을 방법이 없다” [유령아이 리포트]
[헤럴드경제DB]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걱정하는 한국은 역설적이게도 이미 태어난 아이들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아동복지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다. 특히 태어나고 곧장 기록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들은 학대에 방임의 그늘에 놓여 있다.

헤럴드경제와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UBR Network)는 지난 3월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여러 아동업무 실무자들과 소통했다. 이들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의 사례관리를 하면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고 호소했다.

현장의 의견을 취합한 황윤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과장은 “현장에선 하나같이 종합적인 출생등록 관리 체계가 부재함을 문제로 꼽았다”며 “여러 한계 때문에 적잖은 아동의 출생이 누락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 실무자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4가지로 정리했다.

① 정확한 매뉴얼이 없다

국내 출생등록제도는 모든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회피하게 되면 국가가 미등록 아동의 존재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우연히 미등록 아동을 발견하더라도 이들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공유할 통로가 없다. 구체적인 업무 기준도 없어 현장 실무자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개별 사례를 해결하는 일이 빈번하다.

강원도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는 “위기아동이 접수돼도 출생신고 과정을 명확히 안내하는 기관이나 매뉴얼이 없다”며 “어떤 법률과 어떤 내용을 참고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번번이 담당자가 직접 탐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생신고 제때 안 해 2만명 과태료…“막을 방법이 없다” [유령아이 리포트]
[123RF]

매뉴얼이 없으면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한 아동양육시설 관계자는 “(정보가 없다 보니) 출생신고 과정을 경험해본 직원이 계속 같은 업무를 처리하며 알음알음 정보를 축적해 공유한다”고 이야기했다.

아동 학대를 비롯한 각종 아동 문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아보전마저도 미등록 아동 처리는 주먹구구식이다.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역 아보전이 활용하는 아동 학대 전산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한다. 하지만 미등록 아동의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항목은 없다. 현장에선 시스템 개선을 꾸준히 요청하지만 아직 달라진 게 없다.

대구의 한 아보전 사례 담당자는 “아동별로 사례관리일지를 수기로 작성해 개별 파일로 보관하다 보니 정보를 일괄로 추출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② 쪼개진 출생등록 업무

국내에서 아동의 출생등록 업무는 다양한 부처에 흩어져 있다. 가족관계등록은 대법원(법원행정처) 소관이고 주민등록은 행정안전부, 아동복지 정책은 복지부 업무로 돼 있다. 출생신고를 접수하는 건 지역별 지자체가 담당한다. 이렇게 되니 ‘유령아이’ 문제를 책임지고 들여다볼 주체를 꼽기가 애매해진다.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 관계자는 “미상아동 임시 등록, 사회복지 서비스 신청, 후견인 지정 신청, 부양 의무자 확인 공고, 성과 본 창설,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등 출생등록을 위한 절차가 복잡한데 단계별로 담당기관이 제각각”이라며“과정마다 담당자에게 설명하고 요청하며 설득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출생신고 제때 안 해 2만명 과태료…“막을 방법이 없다” [유령아이 리포트]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아동의 복리가 위태로운 경우 검사나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법에 규정된 권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아동의 복리가 위태로운 경우 검사나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이런 의무를 인지하지 못해 거절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지적이다.

강원도의 한 아보전 관계자는 “검찰, 지자체 등 관련기관이 출생신고 지원 업무를 해본 적이 없어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모든 정보를 파악해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 출생신고 의지 없는 부모들…마땅한 대안이 없다

국내 출생신고제는 사실상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가 태어난 지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처벌 규정으로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헤럴드경제가 취재 과정에서 파악한 법원행정처 자료를 보면 최근 2년(2019~2020년) 사이에 출생신고 기한을 넘겨 과태료를 부과된 사례는 2만5026건이다. 현장 실무자들은 현행 제도는 부모들이 제때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출생신고 제때 안 해 2만명 과태료…“막을 방법이 없다” [유령아이 리포트]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경기도의 한 아보전 관계자는 “보호자가 출생신고를 지연시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출생신고를 독려해도 (보호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의 아보전 팀장은 “출생신고 의무를 위반해도 과태료가 소액이고 강제성이 없다”며 “그렇다 보니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거부하고 아보전의 개입까지 막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몇몇 아보전에선 이런 부모를 아동 방임 혐의로 고발했지만 법원에선 ‘혐의없음’ 결정을 냈다. 출생신고를 제때 하지 않는 것이 아동 학대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등록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다 보면 심각한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④ 사회복지번호는 무용지물

미등록 아동은 동시에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교육·의료 등 공적 서비스에서 벗어난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통장을 개설하지 못하고, 각종 생계 지원과 복지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경기도의 한 아동복지시설 담당자는 “아동의 자립을 위해 필요한 후원금과 아동수당, 디딤돌씨앗통장을 사용할 수 없어 자립 준비를 시작할 수 없다”며 “아동의 경비를 시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경우가 많아 시설 운영의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미등록 아동이 최소한의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 전산관리 번호’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건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

서울의 한 아동복지시설 담당자는 “아동보호 서비스 매뉴얼에 사회복지 전산번호를 발급하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해당 지자체가 이 사실을 모르거나 대처방법이 달라 의료나 교육 급여를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사회복지 전산번호로 지원받더라도 기존에 받지 못한 금액을 신청해 환급받기까지의 절차가 길어진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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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