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타다 금지법’으로 제동이 걸리는 듯했던 국내 모빌리티 산업에 글로벌 투자자들의 자금이 잇따라 모여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누가 먼저 혁신적인 서비스를 성공시킬 것인지, 또 그에 수반하는 막대한 비용을 누가 더 오래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커머스 플랫폼을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는 ‘쩐의 전쟁’이 모빌리티 분야로도 옮겨붙는 분위기다.
국내 택시 ‘독점’ 카카오 + 글로벌 자율주행 선두 구글
최근 모빌리티 업계에서 주목받은 이슈는 단연 카카오모빌리티와 구글의 협력이다. 지난 1일, 카카오모빌리티는 구글인터내셔널을 대상으로 565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지분율만 보면 1.7%로 높지 않지만 의미하는 바는 컸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택시 호출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1등 사업자다. 구글은 자회사 ‘웨이모’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앞서 지난 2017년 미국 경영참여형사모펀드(PEF)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으로부터 5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고, 지난 2월에는 세계 3대 PEF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으로부터 22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과정에서 약 3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증명했다. 이르면 내년 미국 상장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성공적으로 마칠 시 또 한 번 막대한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다. 이같은 자금력은 이용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플랫폼 안에 묶어두기 위한 과감한 적자 전략의 토대가 된다.
국내 내비 1위 티맵 + 900개 도시 누빈 우버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또 다른 핵심 플레이어는 티맵모빌리티다. 국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시장의 75%를 점유하는 1위 사업자로, 지난해 SK텔레콤으로부터 분사하면서 우버와 손 잡았다. 우버는 티맵모빌리티에 약 5000만달러(약 575억원)을 직접 투자하고, SK텔레콤과 함께 설립하는 별도의 조인트벤처에도 1억달러(약 1150억원)를 투자하는 등 총 1725억원을 베팅했다. 우버는 현재 수도권에 약 1000대의 가맹 택시를 거느리고 있다. 후발 주자 중에서도 점유율이 낮은 편이지만, 전 세계 900여개 도시에서 축적해 온 우버의 모빌리티 노하우가 ‘국민 내비게이션’과 만나 어떤 혁신을 가져올지가 관전 포인트다.
티맵모빌리티는 지난 8일 또 한번의 투자 유치 소식을 알렸다. 어펄마캐피탈과 이스트브릿지파트너 등 두 PEF 운용사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보통주 유상증자를 진행하며 4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이번 추가 투자 유치로 티맵모빌리티는 1조4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증명했다. 반년 전 우버로부터 투자받을 때 입증한 기업가치(약 1조원)보다 40%나 높아졌다.
카셰어링 독보적 1위 쏘카
카카오가 택시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하는 동안 차량 공유(카셰어링)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곳이 있다. 쏘카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9년 3월 쏘카는 일정 금액을 낼 경우 차량 대여료를 50% 할인하는 구독서비스 ‘쏘카패스’를 내놨는데, 지난 2월 기준 누적 가입 계정이 40만개에 달한다. 특히 누적 가입자 순증 추세를 보면 출시 직후 1년보다 그 이후 1년이 더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쏘카도 지난해 초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국내외 펀드로부터 51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일찍부터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자회사 VCNC를 통해 제공하던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가 국회 입법으로 금지돼 그 성장세가 멈추는 듯했으나, 하반기 SG PE 등으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타다 외의 또 다른 혁신에 대한 잠재력을 입증했다.
MaaS 생태계 주도권 전쟁, 올해가 시작
이들 모빌리티 기업의 목적은 이용자의 이동에 필요한 수단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통합형 모빌리티 서비스, 이른바 마스(MaaS, Mobility-as-a-Service)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용자로 하여금 앱 하나로 카셰어링, 택시, 대리, 주차, 내비게이션, 대중교통 등 이동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경쟁사 앱으로 옮겨가지 못할 만큼 효용을 끌어올려야 구독 모델을 도입해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글로벌 주요 기업 및 자본이 국내 모빌리티 기업에 잇따라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8960억원에서 2022년 2조4160억원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28%에 달하는 성장률인데, 이는 글로벌 시장의 성장세보다도 가파른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MaaS 시장 규모는 2019년 526억달러에서 2025년 1847억달러로 연평균 23%의 성장세가 예상된다.
올해~내년, 서비스 승부수 던질 듯
업계는 올해가 모빌리티 혁신의 또다른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쏘카 등은 내년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상장 성공을 위해서는 향후 성장을 담보할 혁신적 서비스를 올해 및 내년 중에는 내놔야 한다. 지난해 통과된 ‘타다 금지법’이 유예기간을 거쳐 올 10월부터 시행되는데, 이를 통해 운송 플랫폼 사업이 제도화되면서 일정 부분 규제 불확실성이 사라진 상황이기도 하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추구하는 혁신의 방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최근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꽃, 간식 등 소화물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즉 ‘퀵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전업 퀵 기사뿐만 아니라 투잡,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일반 직장인으로까지 범위를 넓혀 기사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업계는 카카오모빌리티가 퀵 시장을 필두로 모빌리티 영역에 물류업을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쏘카의 경우 카셰어링 구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쏘카는 월 단위로 차량을 공유하는 일종의 단기렌터카 서비스 ‘쏘카플랜’을 운영하고 있는데, 경쟁 렌터카 사업자의 단기 렌터카 서비스에 비해 요금을 크게 낮췄다. 지난달 말 기준 누적 계약은 6000여건으로, 한 명당 계약 건수가 1.8회에 달하는 등 계약 연장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중고차 사업 포트폴리오까지 더해, 카셰어링 시장에서 사용된 차량으로 추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