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학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 H.셰이퍼의 명저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글항아리)가 국내 초역·출간됐다. 1963년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이 반세기 만에 국내 소개된 것이다. 당제국의 화려한 물질문명, 특히 육로와 해로를 통해 이국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백과전서적으로 다룬 책은 당제국을 통한 세계 무역 및 문화교류의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 중심에 바로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가 자리하고 있다. 7세기에 사마르칸트 왕국에서 당나라 황제에게 두 차례나 노란 복숭아를 공물로 보냈는데, “복숭아는 거위 알만 했으며 금과 비슷해 황금 복숭아라 불렀다”. 이 나무는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당나라에 이식됐으며, 황금 복숭아는 이국의 진귀한 물건을 애호했던 당나라 사람들의 최애상품이 됐다.
저자가 보여주는 이국적 물건의 목록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술라웨시섬의 앵무새, 사마르칸트의 강아지,고대 마가다국의 기이한 도서, 인도 라자스탄 지역 짬파푸라의 강력한 약, 신비스러운 남해에 있는 나라의 수정베개등이다. 또한 코뿔소, 코끼리, 사자, 흑담비도 당에 조공으로 바쳐졌다. 음식 가운데는 647년 네팔의 왕이 보낸 진귀한 시금치를 비롯, 잣, 후추,새로운 품종의 포도가 포도주 양조기술과 함께 들어오기도 했다.
저자가 관심을 둔 것은 그저 이런 기이한 물건들의 나열이 아니다. 저자는 이들이 당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주목한다. 문화적 빈곤에서 벗어나 형이상학의 세계, 상상력을 불어넣어줬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순다열도의 앵무새는 지혜의 상징이 되고, 불경의 기괴한 문자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갔다.
이국적 취향은 8세기에 귀족부터 일반인들까지 모든 계층의 일상생활에 퍼져 있었다. 화려한 이국의 호기심을 가져오는 외국사절을 이들은 환영했다. 이란 사람, 인도 사람, 돌궐 사람의 모습과 장식들이 모든 계층의 가정에서 쓰이는 물건에 나타났으며, 특히 돌궐 패션은 일대 붐을 일으켰다. 장안의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유유자적하며 천막생활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귀족들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시인 백거이는 집 마당에 푸른색 펠트로 만든 텐트 두 개를 치고 그 텐트에서 손님을 대접하면서 텐트가 얼마나 겨울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는지를 자랑스럽게 과시하기도 했다. 이런 돌궐 스타일 유행은 태종의 아들 이승건이 선도했다.
당나라 초기 수도인 장안은 국제도시였다. 장안 동쪽에 항구로 조성된 인공호수에는 조정에 바치는 각지에서 보내온 공물을 실은 배로 가득찼다. 북쪽에서 온 진홍색 펠트 안장 덮개, 남쪽에서 온 쌉쌀한 맛의 자주색 귤, 동쪽에서 온 분홍색 비단 가두리 장식이 달린 인도산 융단, 서쪽에서 온 진홍색의 명반 등을 실은 배들이 장안으로 향했다. 그런가하면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은 양주였다. “이곳은 인종이 섞이는 도가니였고 한인에게는 일종의 안전하고 아늑한 이국적인 문화의 상징이었다.”
이 시기 신라인은 당나라에서 활동한 가장 큰 외국인 집단이었다. 특히 산동과 동주에는 신라인을 위한 숙박 시설과 정부 시설, 초주와 연수의 도시에 대규모 신라인 거리가 조성됐다. 신라의 배들이 서해안을 지배했기 때문에 일본은 신라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신라의 배를 피해 위험한 항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나라 초기는 국제적이었다. 수입된 외래 물건이 넘쳐나고 다른 문화와 섞이는 황금시대였지만 8세기 후반에 이르면 곳곳에서 여러 난리가 나면서 황폐해지고, 더 이상 신기한 것에 대한 갈망을 채울 수 없게 된다. 이국의 진기한 물건을 구입하기 어려워진 자리를 문학적 상상력, 이야기가 대체하게 된다.
당나라 시대 이국문물을 만화경 처럼 펼쳐놓은 책은 ‘당시의 대가’인 중국학자 답게 문학작품을 자유로이 오가며 이국적 풍경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혀놓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에드워드 H. 셰이퍼 지음, 이호영 옮김/글항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