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보유자 2737만명…절반은 1순위
경쟁 갈수록 치열…수도권 주요 단지서 만점자 속출
분양가 현실화·전월세금지법에 “현금부자만 가능” 불만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내 집 마련의 디딤돌 역할을 해온 청약통장이 애물단지(?)가 돼가는 모양새다. 청약 경쟁이 과열되면서 당첨가점이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특히 수도권 주요 단지에서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에 만점자도 속출하고 있다. 당첨 가능성만 놓고 봐도 그야말로 ‘로또’다.
여기에 고분양가 관리지역 아파트의 분양가 심사기준이 인근 시세의 최대 90%까지로 바뀌고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최대 5년간의 거주의무기간을 부여하는 이른바 ‘전월세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사실상 현금부자만 청약이 가능해졌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무주택자의 주거 사다리를 끊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전국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청약저축·청약부금·청약예금) 가입자는 2737만3638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 2562만4715명에서 175만여명 늘어난 수치다. 국민 2명 중 1명은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비교적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청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의 여파로 그간 새 아파트 공급 자체가 적었던 데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기다리려는 수요까지 유입되면서 주택청약 종합저축 가입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늘어난 만큼 경쟁은 치열해지는 추세다. 1순위 자격을 갖춘 가입자만 해도 지난달 기준 1471만7706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꼴이다. 경쟁률이 높은 것은 물론 당첨가점 커트라인도 올라가고 있다.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청약 당첨자의 평균 가점은 68.8점에 달한다. 이는 배우자, 자녀 2명 등 부양가족이 3인(20점)인 40대가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을 모두 충족해 최고점을 받아야 겨우 채울 수 있는 수준이다.
수도권 주요 단지에선 만점자(84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서울 마지막 분양 물량이었던 ‘힐스테이트 리슈빌 강일’ 전용면적 101㎡D 청약에서 만점자가 나왔다. 당시 1순위 평균 경쟁률은 255.5대 1, 특별공급을 포함한 총 청약자는 13만7000명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점이 낮은 3040세대를 중심으로는 ‘청포족(청약포기족)’이 늘고 있다. 전용 84㎡ 초과 물량의 경우 일부 추첨제가 있으나 1주택자도 청약이 가능해 경쟁률이 높고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9억원 선을 넘는 경우가 다수다.
이런 가운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과 전월세금지법 시행으로 무주택자를 위한 청약의 문은 더욱 좁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집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가 시세의 90%까지 높아질 경우 자금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은 청약의 기회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각종 대출 규제로 자금 마련이 쉽지 않은데 실거주 의무까지 생기면 입주 시점에 전월세를 놓고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른 뒤 차후 입주하는 방식의 내 집 마련도 불가능해진다.
정부는 분양가 현실화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와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시장 개편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무주택자의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분양가 상승은 현금부자만을 위한 방안으로 무주택자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박탈됐다”고 토로했다.
eh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