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美·獨·日 증거조사 제도 분석·전문가 의견수렴

원활한 증거수집으로 입증 수월·소송기간 단축

해외 소송에 따른 수천억 로펌비용 방지 기대

정부가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을 계기로 관심이 높아진 해외 주요국의 ‘디스커버리(증거조사) 제도’를 국내 불공정무역 조사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5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불공정무역행위 조사에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마무리하고 이달 중 세부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무역위원회는 특허를 비롯해 영업비밀,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걸쳐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최종 판정하는 행정기관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을 계기로 국내에서 디스커버리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무역위원회는 미국·독일·일본 등 해외 주요국 증거조사 제도를 분석하고, 국내 기업 관계자와 지식재산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재판에 앞서 당사자들이 소송과 관련된 증거를 상호 공개하거나 제3의 전문가가 직접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하는 제도다. 미국·독일·일본은 자료 제출을 거부 또는 은폐하면 강제수색을 집행하거나 패소 판결을 내려 불이익을 준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이 한국이 아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한 이유 중 하나도 디스커버리 제도 때문이었다. 미국에선 분쟁을 예상한 시점부터 증거보존 의무가 발생한다. 재판에 본격 들어가기 전에는 당사자끼리 광범위한 내용의 증거를 교환하도록 한다. 증거 제출에 불성실하면 법정모욕에 해당돼 벌금을 부과하거나 상대방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잦아 증거 수집이 어렵고 소송이 길어지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소송 절차의 효율성을 높이고, 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허법원 판사를 지낸 최종선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자료 제출이 원활히 되지 않아 증거수집이 어렵고, 특허권자의 권리 보호가 취약하다"며"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자료나 증거확보가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처럼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의 소송을 택해 수천억원 상당의 로펌 비용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를 악용해 영업비밀 탈취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 소송에 취약한 기업들이 먹잇감으로 전락해 막대한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자부는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현행 불공정무역조사법과 하위 행정규칙 등을 개정해 추진할 방침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선 기업과 지식재산권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는 데 주력했으며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법원의 특허소송에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특허법 개정안이 여야 양쪽에서 모두 발의된 상태여서 앞으로 국내 지식재산권 및 기술특허 등을 둘러싼 기업 간 분쟁에서 증거수집 절차가 한층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현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