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종가] 초야 선비들 인텔리겐챠 살롱

월출산 옥판봉 아래 원주이씨 백운동종가

이담로,이상세계 꿈꾸며 백운동원림 조성

꼬마선비,절경에 빠진 다산에 강한 첫인상

정약용-이시헌 茶와學 사제의리 203년째

이한영-이현정 백운옥판차 원형-마음 계승

강진 원주이씨 병사공파 백운동 종가의 별서정원. 자연 계곡물이 마당을 들렀다가 다시 나가는 유상구곡이 보인다.
강진 원주이씨 병사공파 백운동 종가의 별서정원. 자연 계곡물이 마당을 들렀다가 다시 나가는 유상구곡이 보인다.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유배 12년차. 다산 정약용(1762~1836)에겐 남도에서 아직 못가본 곳이 있었다. 180년 뒤 유홍준이라는 문인 후배가 강진-해남을 책 첫머리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 문화유산답사기를 썼을 정도로 이 일대는 가볼 곳이 많았으리라.

신하가 임금에게 옥판을 두손모아 내밀며 예를 갖추는 형상의 옥판봉이야 자주 보지만 그 아래, 천혜·지혜가 어우러진 백운동원림이라는 절경이 있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이다.

1812년 9월, 자연 절경에 원주이씨 병사공파 종가의 지혜가 어우러진 백운동 원림에, 다산이 초의선사, 몇몇 성인 제자와 첫 방문을 한다.

백운동 12경.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리고 다산이 시를 써 백운첩을 만들었다.
백운동 12경. 초의선사가 그림을 그리고 다산이 시를 써 백운첩을 만들었다.

다산 일행은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 산다경의 동백그늘, 백매오의 매향, 단풍빛 옥구슬폭포, 마당을 들어왔다 나가는 유상구곡 물굽이, 푸른 창하벽 바윗돌, 정유강의 용비늘 소나무, 꽃계단의 모란, 사랑채 취미선방, 단풍 비단장막, 옥판봉 조망이 아름다운 정선대, 운당원 왕대숲 등 백운 12경에 취하게 되는데, 참을 수 없는 흥취는 ‘시 다산, 그림 초의’ 백운첩으로 거듭난다.

운당원 대숲
운당원 대숲

백운동 차기 동주 이시헌(1803~1860)은 그때 아홉살임에도 의관을 정제하고 말투를 고쳐가며 다산을 맞는다. 다산이야 풍경에 취했겠지만, 시헌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청정 생태, 맑은 정신을 가졌으니, 다산의 지혜까지 전수받아 선비의 3위일체를 이루겠다는 계획이었다. 풍경에 놀라고 꼬마선비의 의지에 놀란 다산과 시헌의 만남은 다산의 가장 어린, 가장 사랑하는, 가장 오랜 사제의 끈끈한 의리를 낳는다.

둘은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며 토론하는 사제, 웰빙 월산차,옥판차 제조법의 연구개발 파트너로 지내다가 다산이 유배를 마치고 경기도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매년 곡우때 편지와 옥판차를 보내고, 다산은 학문적 충고와 안부,근황을 염려하는 우정 어린 답장을 보내는 의리로 계속된다.

백운동 별서정원 옆 대규모 차밭.
백운동 별서정원 옆 대규모 차밭.
20세기초 후손들이 상표화에 성공한 백운옥판차(왼쪽)와 금릉(강진)월산(월출산)차.
20세기초 후손들이 상표화에 성공한 백운옥판차(왼쪽)와 금릉(강진)월산(월출산)차.

이 교류는 다산의 후손, 이시헌의 후손으로 이어졌다. 2021년, 사제가 ‘다신계(차를 통한 신의)’를 맺은 지 203년째를 맞았다. 두 가문은 올해 또, 방역수칙을 지키며 만날 것이다.

원주이씨는 박혁거세 신라왕 추대 귀족인 이알평(경주이씨)의 후손으로, 고려 병부상서 이신우가 원주에 터 잡으면서 형성됐다. 수양대군 쿠데타 성공에 분개한 15세손 이영화 강릉부사가 초야 은둔지로 해남을 택하면서 남도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강진 공식 입촌은 무장(고창)현감을 지낸 이남(1505~1555)이 했다. 을묘왜변(1555) 때 해남 북평 남창 달량성이 왜적에 포위돼 구원을 요청한 해남현감 변협을 가솔과 함께 지원하다 전사해 호남절의록에 공적이 기록됐다.

병사공파는 충신 무관인 이억복(1537~?)이 개창했고, 이억복의 아들 이해(1568~1611)는 백운동(백운사 있던 산촌 마을) 종가를 열었으며, 이해의 손자 이담로(1627~?)가 백운동별서정원을 조성해 초대 동주가 된다.

종가의 6세손 이의경(1704~1778)은 사도세자의 스승으로 세자 음해세력들에 염증을 느끼고는 낙향했다. 1762년 사도세자가 죽자 3년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백운동 별서정원 정선대 정자에서 본 옥판봉. 정약용의 최애 제자 이시헌은 정선대 앞 소박한 묘에 묻혔다.
백운동 별서정원 정선대 정자에서 본 옥판봉. 정약용의 최애 제자 이시헌은 정선대 앞 소박한 묘에 묻혔다.

이해의 9세손 이시헌은 선조의 문집, 행적, 편지 등은 물론 경향 각지 명사들이 쓴 별서 정원 풍광에 관한 제영시를 묶어 책으로 펴내고, 남도 선비들과 학문교유를 활발히 하는 등 가문과 별서정원을 중흥시켰다. 이시헌이 다산과 제다법을 완성한 백운옥판차는 현재 이현정(49) 박사가 계승하고 있다.

이현정이 운영하는 이한영전통차문화원과 직영찻집. 백운동 정선대 닮은 정자가 서있고, 이곳에서도 옥판봉이 보인다.
이현정이 운영하는 이한영전통차문화원과 직영찻집. 백운동 정선대 닮은 정자가 서있고, 이곳에서도 옥판봉이 보인다.

이시헌의 증손이자 이현정의 고조인 이한영은 일제때 우리 차에 일본 상표가 붙으려하자,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무늬를 넣은 우리 상표 ‘백운옥판차’를 선제적으로 반포했다.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