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소금에 알맞게 절이고….” 조선 시대 실학자 정약용 아들 정학유가 편찬한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이다. 어릴 적,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마다 메주를 쑤어 매달고, 문짝을 떼어 새옷을 입혔다. 날이 더 추워지면 일가친척, 이웃이 함께 모여 김장에 힘을 보탰다. 사내들은 밭에서 배추를 나르고 아낙들은 소금물에 배추를 절였다. 무채와 젓갈, 파, 마늘, 생강, 고춧가루를 버무려 만든 양념을 절인 배추에 속박이 하여 만든 김치를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함께 웃던 풍경이 선하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김치를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초기 김치는 소금 등에 채소류를 절여 저장성을 높인 절임 채소류로서 김치보다는 장아찌에 가까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중기, 고추가 들어오면서 우리 김치는 좀 더 다양화되기 시작했으나, 19세기 말까지는 채소 그 자체의 맛을 살려 청담한 맛을 낸 섞박지 형태였다. 김치가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선조들의 지혜가 보태지고 현대 채소육종 기술이 더해진 덕분에 가능했다.
좋은 식재료가 조화를 이룬 김치는 건강식품으로서 과학적으로 여러 효능이 입증돼 있다. 미국의 건강연구지는 김치를 올리브유, 요구르트와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했다. 프랑스 몽펠리에대 연구팀은 올 7월 한국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김치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배추와 무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고혈압, 당뇨병 등 성인병 예방과 변비,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된다. 부재료로 사용되는 마늘의 알린, 알리신은 항균과 항암, 동맥경화 억제의 효능을, 고추의 캡사이신은 비만 예방과 항산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김장문화는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로 정리된다. 채소를 절여서 오랫동안 저장해 두는 음식은 다른 문화권에도 많지만 한국의 김장처럼 겨울이 다가오기 전, 온 국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집중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저장해두는 풍속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가정마다 김장 양을 줄이고 아예 포기하는 집도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버무리는 일련의 과정은 참으로 고단해 주부 혼자서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김장문화가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해 힘을 보태는 하나의 훈훈한 이벤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무 등의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면서 전체 김장 비용은 평년과 비슷한 안정세를 찾고 있다. 가을배추는 맛있고 영양 성분도 풍부하다. 농부의 땀과 농산물의 소중함, 건강, 나눔이 한 데 버무려진 김장문화가 코로나19로 위축된 우리 삶을 훈훈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리라 확신한다.
황정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