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제로 기업옥죄기
공정경제 3법 이어 잇단 규제입법에 ‘곡소리’
글로벌 불확실성 가중 속 기업경영 부담 키워
소송남발·전문소송꾼 등장 땐 비용감당 불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회와 정부가 기업규제 ‘끝판왕’인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이른바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에 이은 규제 입법은 산업·경제계의 불안감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 부담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이유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불법행위가 악의적이나 의도적으로 행해졌을 때 법원이 불법 행위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금전 지급을 명하는 손해배상이다. 현실적인 손해를 회복하려는 목적성이 강해 보상적 손해배상과 개념이 다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무분별한 소송문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논란은 여전하다. 판결의 효력 범위에 대해 일부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결과를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도와 연계돼 파급력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EU는 지난 2000년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도를 ‘독성이 강한 칵테일(toxic cocktail)’이라고 규정했다. 이를 그대로 도입할 경우 집단소송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이후 EU는 10년 이상의 논의 끝에 2013년 소송제도에 대한 공통원칙을 권고 형태로 제시했다. 권고안은 소비자·경쟁·환경·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해 제기되는 집단적 분쟁에 적용했다.
국내 산업계의 고민이 시작하는 지점도 다르지 않다. 개별 법률에 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상법의 테두리에 넣어 적용 범위가 늘어날 경우 관련 소송과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는 완성차 업계를 포함해 가전, 유통 등 소비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상품과 서비스 전 분야를 아우르는 화두다. 법원이 손해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한다면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눈덩이로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실장은 “승소 판결에 따른 거액의 배상을 목적으로 한 기획소송 가능성이 크고 기업에 합의금을 종용할 유인도 있어 기업 입장에선 소송 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을 것”이라며 “또 판결과 무관하게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 기업의 대외적인 평판이나 신인도가 저하되는 등 경쟁력에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전·유통 등 현장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에 기업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가전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법과 규정이 잘 정비되지 않는다면 기업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라며 “실행하는 구체적인 규정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아 유권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수출업계 관계자는 “소송남발, 전문소송꾼의 등장이 우려된다”면서 “소송이 늘면 해외 기업활동 위축은 물론이고 향후 기업의 상시적인 법률비용이 높아져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한국형 레몬법의 타격을 키우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완성차 업체가 생산한 차량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천문학적인 벌금을 받아들 수 있다는 얘기다.
BMW 차량 화재와 아우디 배기가스 조작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유사한 사례가 발생한다면 기업은 해외와 마찬가지로 거액의 징벌적 배상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는 “소비자를 위한 보호장치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기업 입장에선 부담스럽고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의 보호장치와 기업의 윤리적인 의무 강화 등 한국 기업 사정에 맞는 고유모델로 발전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