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와 합종연횡…LG화학 왕좌지키려 ‘분사’
VW·PSA, 신생사 손잡고 자체 배터리생산 박차
전기차 ‘심장’ 배터리 놓고 주도권 다툼 격화
#. 2010년 5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미국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경영위기에 처한 테슬라에 자본을 출자하고 업무협약을 맺기 위해서였다. 당시 도요다 사장은 “벤처기업인 테슬라의 도전정신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머스크는 “도요타의 출자는 가뭄의 단비”라고 화답했다.
#. 2020년 7월 1일 상황은 뒤집혔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도요타를 제치고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 1위에 등극했다. 당시 테슬라 시총은 2076억달러(243조5000억원), 도요타는 21조7185억엔(243조3000억원)였다. 이후 100일이 채 안돼 양사의 시총은 배가까이 벌어졌다.
도요타와 테슬라의 시총이 역전된 것은 전기차의 미래 성장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도요타의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가 테슬라보다 30배가량 많지만 시장은 전기차에서 미래를 봤다. 그 미래의 ‘동력’이 바로 배터리다.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은 말그대로 전방위적이다. 업체간 동맹은 물론 분사를 통한 성장성 확보,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자립 선언, 차세대 배터리 기술경쟁까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회사 쪼개 천문학적 투자금 조달=LG화학이 지난 17일 배터리 사업부 분사를 단행한 것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배터리 시장에서 왕좌를 지키기 위해서다. 전지사업을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대규모 투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전략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신설법인 ‘LG에너지솔루션’을 2024년 매출 30조원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중장기적으로 전지사업 분사를 계획 중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2022년께 분사 가능성이 점쳐진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는 당분간 수익보다 투자가 많이 이뤄져야 해 자금조달이 필수”라며 “단순한 회사채 발행이나 완성차 업계와의 협력은 한계가 있어 분사와 상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 확보 움직임이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완성차-배터리 넓어진 연합전선=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잡기 위한 배터리업체와 완성차업체의 합종연횡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LG화학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중국 지리자동차와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베이징기차와 합작법인 세웠고 중국 전지업체 EVE에너지와는 중국내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도요타, 테슬라와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며, 중국 CATL은 테슬라와 동맹을 맺었다.
박세영 노무라증권 본부장은 “10년뒤 전기차 시장은 현재보다 30% 확대될 것”이라며 “각국의 그린에너지 정책에 맞춰 시장이 커감에 따라 배터리 소재나 셀, 모듈, 패킹, 수명연장과 같은 모든 부문에서 업체간 기술경쟁이나 합종연횡은 더 치열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A부터 Z까지 다 만든다” 완성차업체 배터리 자립 가속=내연기관차 엔진의 아성을 이어가려는 유럽 완성차 업계는 신생 배터리업체와 의기투합해 배터리 자체 생산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VW)은 작년 11억달러를 투자해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2차전지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합작법인의 생산능력은 최대 연간 30GWh로, 이는 2025년 폭스바겐이 유럽에서 필요로하는 전기차 배터리의 20%를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다.
푸조시트로엥(PSA)도 프랑스 배터리업체 사프트와 손잡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배터리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PSA의 배터리 공장 생산능력은 각각 16GWh다.
▶미래기술은 ‘각축’=미래 배터리에 대한 기술경쟁도 뜨겁다. K-배터리 대표주자 LG화학은 최근 리튬-황 배터리를 활용한 최고도 비행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켰다. 리튬-황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2배 이상인 차세대 배터리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 비율을 90% 중반대로 높인 초고밀도 배터리를 2023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1회 충전에 800km 주행 가능하고 안정성이 높은 ‘꿈의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연구 중이다.
완성차 업체도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도요타는 2018년 혼다, 닛산, 파나소닉 등 23개 업체와 함께 신에너지 및 산업기술개발(NEDO)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22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기술기반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박찬길 SNE리서치 연구원은 “엔진 주력이던 완성차업체 입장에서는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를 내재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다”며 “향후 배터리 업체와의 협상에서도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배터리 기술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