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서방으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날개없이 추락하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경제 손실을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 낼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를 떠받치는 원유 가격이 지난 3개월 간 25%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푸틴 정권 유지를 위한 유가의 마지노선이 얼마가 될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유가 80달러가 마지노선=러시아 저명 경제학자인 세르게이 구리예프<사진>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는 1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를 통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푸틴 정부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리예프 교수는 러시아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큼에도 “향후 2년 간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 선을 유지하면 러시아 정부가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풍부한 정부 기금 ▷변동환율제 도입을 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비해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 규모의 예비금을 조성해놨는데, 향후 3년 간 유가 하락으로 인한 정부 세입 결손금을 충당하기 위해 이를 GDP의 3%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최근 수정했다.
또 국부펀드(NWF) 같은 기금을 활용해 서방 제재로 피해를 입은 기업과 은행, 인프라 등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내년 자유변동 환율제가 도입되면 유가 하락으로 인해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 자연스럽게 유가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루블화의 통화가치 절하 과정이 견조하게 이뤄지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추락하더라도 정부 예산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수 있다고 구리예프 교수는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러시아 경제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됐다.
계속된 경제 침체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지금처럼 민심을 달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구리예프 교수는 “자금 유출이 계속됨에 따라 향후 수년 동안 투자가 줄어들고 저성장이 올 것”이라면서 국제기관들과 전문가들은 러시아 내년 성장률로 정부 전망치 2%보다 낮은 0.5%를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러시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있지만, 루블화 약세로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면서 전반적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소비자 체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과 소비재의 순수입국이란 점에서 민심이 요동칠 것이란 비관론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구리예프 교수는 “러시아 정부가 동원하는 선전과 정치적 억압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이며 “군사적 위협 등 대외정책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 서방 제재보다 유가급락이 더 무섭다
▶러시아 경제타격은?=푸틴 대통령에게 서방의 경제 제재 보다 무서운 것은 국제유가 하락이다.
2조달러 규모의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ㆍ천연가스 판매 수입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또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입이 줄면 대외 신인도가 약해져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기 어려워진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원유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제 유가가 6월 이래 23% 넘게 곤두박질치면서 러시아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분석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서방의 대러제재보다 유가 하락이 러시아 경제에 더 큰 하방압력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여가던 지난 여름 내내 가치 하락을 비교적 잘 방어해온 루블화가 최근 들어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10일 동안 60억달러를 풀며 적극 개입에 나섰지만, 13일 모스크바 외환거래소에서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40.50루블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치를 새롭게 갈아치웠다.
모스크바 소재 컨설팅업체 매크로어드바이저리의 크리스 웨퍼는 모스크바타임스에 “루블화는 ‘석유 통화’(petro-currency)”라며 “실제로 8월 초 이래 원유 가격이 8% 떨어지자 달러-유로 바스킷에 대한 루블화 가치가 9%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유가 하락으로 내년 세입예산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 정부가 거둬들이는 국세수입의 45%가 원유에서 나올 정도로 비중이 커서다.
때문에 타치야나 네스테렌코 러시아 재무부 제1차관은 유가와 환율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세입 결손 발생이 불가피하다고 지난 13일 밝힌 바 있다.
러시아가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 기초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다. 브렌트유 가격이 이날 배럴당 88.89달러 수준으로 떨어진 것과 비교해보면 큰 폭의 차이가 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비해 조성한 예비금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네스테렌코 제1차관은 세입 결손금을 충당하기 위해 향후 3년 간 에너지 예비금 740억달러의 절반 정도를 써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가가 지금처럼 약세를 지속하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흘러나온다.
찰스 로버트슨 르네상스캐피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92~93달러에 도달해야만 러시아 경제 성장에 긍정적 전망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유가가 90달러에 그치면 내년 러시아 경제 성장률은 0.4% 포인트 위축되고, 80달러까지 떨어지면 1.7%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