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이 대혼돈의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가 간 기술 패권전쟁에 더해 기업 간 시장주도권 경쟁까지 가열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승승장구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래 불확실성에 하루하루를 긴장의 연속으로 보내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발효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15일부터 미국 기술·장비가 들어간 모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급이 중단된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인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이미 화웨이로 향하는 매출 감소를 각오하고 있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포기상태다. G2 간 기술 패권경쟁에서 기업이 마땅히 대응할 방안이 없어서다.
일각에선 화웨이의 빈자리를 꿰찰 대체 기업들의 수요를 다시 이들이 가져올 것이란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낙관적인 시각이다. 화웨이를 대체할 기업들 또한 중국 기업들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들 대체 기업이 성장해 미국을 위협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칼을 꺼내 들 수 있다.
국가 간 기술 패권전쟁뿐 아니라 빠르게 재편되는 반도체산업의 구도 또한 우리 기업들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 인공지능산업이 잉태기를 지나 확장기로 접어들자 반도체산업의 경쟁구도는 보다 격화되고 있다. 합종연횡의 흐름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400억달러(약 37조5000억원)에 ARM을 소프트뱅크로부터 인수하기로 했다.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다.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제조사인 엔비디아와 ARM의 결합은 모바일 비메모리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설계 능력이 약한 우리는 대체 시장을 찾고 있다. 비메모리반도체 부문 중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 승부를 걸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 주자다. 이에 삼성전자는 대만의 TSMC와 파운드리산업의 최후 승자 자리를 두고 사실상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삼성이 가진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애초 대만의 TSMC는 화웨이 제제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정반대다. 오히려 미국의 중국 옥죄기에 대만의 TSMC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추격자 삼성으로선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반도체산업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혼돈기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은 미미하다. 오히려 기업은 발목에 잡혀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절대 강자인 삼성그룹의 총수는 또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전쟁 중에 장수를 잃었다는 탄식이 업계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부의 외교력 또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 이래저래 첩첩산중이다. 또다시 기업 스스로가 가진 자생력으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