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선배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손녀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코로나19로 몇 달을 학교에 가지 못해 새로 산 가방과 실내화를 쓰지도 못하여 속상해했다고 한다. 이제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친구들과 학교에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돌아와 또 속상해하는 걸 보니 본인이 더 속상하더라는 얘기였다. 일각에서는 이 세대를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삶의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해 ‘V세대’라고 칭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류는 현재 역사상 가장 기묘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 됐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례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관중 없이 경기하는 스포츠, 몇 달째 이어지는 재택근무, 학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진행되는 화상수업, 테이블은 치우고 포장만 가능한 식당, 온라인 종교활동 등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도 상상 못 했을 법한 상황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위기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상황이 지속될수록 사회의 약한 고리부터 끊게 됨으로써 지금까지 인류를 지탱한 유대감이 상실될 수 있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이미 수면 위로 올라온 인종, 세대, 계층을 망라한 갈등이 터짐에 따라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심리적인 트라우마는 남아 있을 것 같다. 유사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상황은 한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자칫 방치돼 아무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기업과 정부, 지역사회, 산업계가 모인 광범위한 ‘초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초협력은 단지 코로나19 사태 해결만이 아니라 현재 전 세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난제인 기후 변화, 디지털 격차 해소, 난치병 극복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례로 내가 몸담고 있는 인텔에서는 최근 ‘팬데믹 대응 기술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하며 자사뿐 아니라 파트너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인텔이 보유한 전문성과 자원, 기술을 외부와 공유해 보다 빠르게 바이러스를 진단 및 치료하고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업계 연합체를 구성해 현재와 미래에 발생 가능한 전염병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교육계 비영리 단체와 비즈니스 파트너를 지원해 기술 접근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가정 내 학습이 가능하도록 돕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내 의료 인공지능 전문기업인 제이엘케이를 지원해 현장에서 감염병 검사를 할 수 있고 데이터를 엣지와 클라우드에서 수집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초협력은 기업이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단지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 기업이 가진 전문성과 기술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수반돼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권명숙 인텔 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