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0년 한 해의 반환점이 목전이다. 뒤돌아보면 기억나는 이벤트가 거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났다. 하루하루 송출하는 기사조차도 코로나19와 연관되지 않으면 시쳇말로 기사가 안 됐다. 이렇게 반년. 지난 2월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지며 위기감이 고조될 때에도 6월의 모습이 이럴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산발적 지역 감염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최악의 국면을 지나 상황이 극적으로 호전된 게 사실이다. 방역의 수위도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속 거리두기’로 다소 제한이 있지만, 그나마 일상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다. 무관중이긴 하지만 프로야구 등 프로스포츠 또한 열리고 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일상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니, 이제는 불가능해졌다고 고백하는 게 보다 적절해 보인다. ‘한 달 뒤라면’, ‘3개월 뒤라면’, ‘6개월 뒤라면’의 가정으로 일상생활의 원상 복귀를 기대하는 ‘희망고문’은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된 듯하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니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대하고 기약 없이 대면 접촉을 피하며 시간을 보내는 방어적 삶과는 작별을 고했다. 대신 바이러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상대적으로 능동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라이프스타일의 패턴 자체가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본업인 취재의 방식과 패턴, 개인의 여가 생활, 가족과의 관계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혁명과 같은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일상의 변화는 비단 개인의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과 정부 모두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변화를 일시적인 단기 해프닝으로 여기는 인식이 여전히 저변에 폭넓게 깔린 것 또한 현실이다. 석 달의 사용기간이 부여된 재난지원금, 벌써 3차까지 온 추가경정예산 등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재난지원금 이후 다가올 소비 절벽에 대한 대안이 없다. 불안해하는 부모들의 정서에 대한 합리적인 납득 없이 등교를 강행하고 있는 교육당국의 정책 추진 또한 내년 학사 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는지 의문을 낳게 한다.

재난지원금이나 추경, 등교수업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 기업가, 학자들 모두가 세상이 변할 것이라 외치지만, 레토릭(수사)에 그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다. 내심 이러다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고비만 넘기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은 필연 도태를 낳을 것이다. 이제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코로나19 이후 시대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언택트 시대에 근로자의 지위는 어떻게 변화할지,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일 것이며, 기업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등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다.

하루하루를 끈질기게 버티는 ‘존버’의 정신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변화가 불가피한 현실을 직시할 때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