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선호 확산

골드바·코인 넘어서

금광 생산량도 줄어

중앙은행 매입 주춤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금에 투자하는 방법이 바뀌고 있다. 골드바나 코인과 같은 실물보다는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금융상품 형태가 보편화되는 모습이다.

국제금협회(WGC)가 최근 발간한 ‘2020년 1분기 금 수요’ 보고서를 보면 전반적으로 금값이 상승한 가운데 ETF를 통한 수요가 급증, 실물수요를 추월했다.

1분기 금 ETF가 보유한 금은 3185톤에 달했다. 1분기에만 298톤이 유입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국제적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인해 최근 4년 내 분기 단위로 유입이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ETF를 통한 금 투자 유입이 늘어나면서 달러 단위 금 가격이 8년 내 최고치까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금 수요 증가는 보석시장이 얼어붙은 상태에서 나왔다. 분기별 보석 수요는 전년 대비 39% 감소한 325.8톤을 보여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장 큰 보석 소비 시장인 중국 수요도 65%나 감소했다. 국제적으로 내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사치재인 보석 수요는 줄어들었지만 안전 투자처 선호 바람에 힘입어 금 수요 촉진효과를 부른 셈이다.

보고서는 “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 정부가 봉쇄 조치를 강요하면서 보석 수요를 대폭 줄였다”면서도 “전염병의 규모에 따른 잠재적인 경제적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안전한 자산을 찾았다”고 했다.

올 1분기 금수요는 1083.8톤으로 전년동기의 1070.8톤 대비 1%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하지만 금값이 8년 내 최고치까지 높아진 데에는 공급 측면에서 일어난 장애요인도 한몫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각국 정부의 이동금지 조치로 1분기 금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4% 떨어졌다. 이번 분기 생산량은 5년 내 최저 생산량인 795.8톤에 불과하다.

올 1분기에는 비(非)달러 표시 금값이 달러 표시 가격보다 더 오른 점도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쇼크가 3월 금융시장을 덮치면서 극도의 안전선호 현상이 벌어졌다. 이 가운데는 달러 현금 수요가 가장 폭발적이었다. 일부에서는 금을 팔아 달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의 경우 상대적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들 화폐로 표시된 금값이 달러 표시 가격보다 더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편 지난 수년간 금값 상승을 주도해 온 중앙은행들의 골드 바 매입은 눈에 띄게 줄었다. 달러 강세에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부담 탓으로 분석된다. 특히 가장 적극적이었던 러시아 중앙은행은 골드바 매입을 잠정 중단했다. 러시아는 사우디와 함께 유가전쟁을 벌이면서 재정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유관련 수입이 재정의 40%를 차지하는 러시아 정부는 당초 올 예산을 유가 42달러 선을 기준으로 편성했지만, 현재 가격은 그 절반이다. 원유수입 부족에 따른 달러 유입 감소는 외환보유고 등으로 충당해야 한다. 실물 금괴를 매입할 여력이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