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가장 언급을 꺼리는 이슈는 단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다. 2015년 당시 청와대가 두 회사의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창구로 국민연금이 활용됐고, 이는 지금도 정치적 독립성을 입증하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스스로 ‘사회적 연금주의’라는 비난의 여지를 제공한, 씻지 못할 트라우마다.
국민연금에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있으니, 전북 전주 이전 이슈다. 2017년 이전 이후 무엇이 개선됐는지 물어보면 ‘(수익률이) 양호하다’ 혹은 ‘(운용역 이탈 등)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궁금한 것은 ‘A의 효과’인데, 반응은 ‘A에도 불구하고 괜찮다’가 먼저다. ‘전주’는 언급만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일종의 외상인 듯했다.
트라우마의 극복은 원인을 직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전주 이전을 지적하는 핵심은 해당 결정이 기금 운용의 제1원칙인 ‘수익성’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금운용본부가 하는 모든 활동은 설령 끼워 맞추기 식이더라도 “수익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주 이전 결정에 있어 수익성은 명백히 우선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는데, ‘그래도 보기 나쁘진 않다’고 한다.
정말 보기 나쁘지 않다면 그것도 일종의 극복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주 이전이 수익성에 미치고 있는 부정적 여파는 여전하다. ‘서울에 남아 있는 기금운용본부’와 ‘전주로 이전한 기금운용본부’를 동시 비교할 수는 없으니, 운용수익률 등은 차치하고 전주 이전 직후 나타났던 부정적 효과의 해소 여부만 살펴보자.
우선 자금을 굴리는 운용역 인프라 훼손. 지난해에만 23명의 운용역이 기금운용본부를 떠났다. 지난해 말 운용역 수(258명)의 9%에 해당한다. 34명이 떠난 2018년에 비해 이탈 규모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운용역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뼈 아픈 손실이다. 물론 서울에 있을 때에도 운용역은 정원 미달이었다. 다만 정원 충족률을 비교하면 2017~2019년 3년 평균(89%)이 2014~2016년 평균(93%)보다 현저히 낮다.
신규 채용이 원활하지도 않다. 국민연금은 장기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 및 대체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채용의 공고 내용을 보면 사모·부동산·인프라 등 대체투자 영역에 배정한 채용 예정 인원은 번번이 8명 이상이었다. 하지만 해외증권실, 사모투자실, 부동산투자실, 인프라투자실 등 관련 부서의 지난 1년 순증 인력은 5명에 그쳤다.
국민연금은 향후 10년을 유동성에 대한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 ‘골든 타임’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당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지급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10년 뒤면 다가온다는 의미다.
기금운용의 제1원칙인 수익성을 위해, 무엇이든 전향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