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판매 ‘라임레포플러스 9M’
플루토FI D-1호 50%까지 투자가능
4등급인데 1등급 자산에 44% 투자
확정금리로 설명하고 절반 손실 위기
펀드 등급기준 실재위험도 반영 미흡
사모펀드는 규정 없어 운용사 멋대로
금융위 “판매사가 운용사 견제 역할을”
“펀드 위험 등급이 4등급(보통 위험)이라 그래서 믿었죠. 그런데 1등급(매우 높은 위험) 자산을 절반이나 편입한 거에요.”
지난해 7월 기업은행이 판매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라임 레포 플러스 9M’에 가입한 A 씨는 펀드 환매 중단 소식을 듣고 계약서를 다시 살펴보다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는 4등급인데, 가장 위험한 등급(1등급)의 ‘라임 플루토 FI D-1호’ 사모펀드를 50%까지 편입할 수 있도록 상품이 설계돼 있었던 것이다.
실제 A 씨가 가입한 펀드 자금 44%가 해당 펀드에 들어갔다. 해당 펀드는 라임 사태로 환매가 중단된 4개의 모(母) 펀드 가운데 하나로 손실률이 46%다.
헤럴드경제가 확보한 펀드설명서에는 제일 첫머리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펀드 이름과 함께 ‘4등급(보통 위험 등급)’이라고 적혀 있다. 펀드의 가장 핵심이 되는 특징을 ‘4등급’이라 설명한 것이다.
아래 쪽에는 ‘라임 플루토 FI D-1호’ 펀드가 “확정금리성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과 두세달만에 수억원을 날릴 처지에 처한 A 씨는 “처음부터 속이기 위해 등급을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라임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의 위험등급 책정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실질적으로 아무 규제도 없이 방치되는 탓에 라임자산운용과 같이 악용될 경우 사기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 사모펀드에 대해서는 위험등급와 관련한 어떠한 규정도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위험등급 책정 및 공시 의무가 없고, 권고되는 기준도 없다”며 “펀드 설정 이후 사후 등록 형식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사전 심사 등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투자상품은 정량적·정성적 요소에 따라 초고위험,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 초저위험 등 5단계로 분류한다.
고위험 상품군의 경우 자산운용사의 펀드 중 2∼3등급, 채권 중 BB+이하, 기업어음·전자단기사채 B+이하, 해외채권 C 이하,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 중 원금 비보장형 상품이 해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부적인 투자권유준칙은 금융투자회사마다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다.
공모펀드의 경우 2016년 수익률 변동성에 따라 ‘매우 높은 위험’(1등급, 수익률 변동성 25% 초과)~‘매우 낮은 위험’(6등급, 0.5% 이하)의 6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다만 사모펀드는 이러한 규정의 예외다. 자산운용사가 임의로 정해도 무방하다.
라임이 초고위험 자산을 50%나 편입한 펀드를 4등급으로 분류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후에라도 위험등급이 적절하게 책정됐는지를 심사하는 절차도 없다. 편입 자산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모펀드의 위험등급 책정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시장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는 만큼 편익을 저울질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을 때도 위험등급 관련 내용은 빠졌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모펀드의 위험등급을 사전 심사하고 공개하게 할 경우 공모펀드와 차별성이 없어지게 돼 좀 더 판단이 필요하다”며 “이번 대책에 신탁사와 판매사가 운용사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일정 부분 보완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산운용사가 사모펀드의 위험등급을 마음대로 책정하게 방치한 것이 불완전판매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라임 사태처럼 등급 자체가 소비자를 혼동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 실장은 “금융투자상품을 특정 등급으로 책정했다면 판매할 때 투자자에게 왜 그러한 등급으로 책정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