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엔 어느덧 쌀쌀하다. 초록잎의 어깨에 앉았던 빗방울을 바람이 흔든다. 그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겨울을 목격했다. 박근혜정부는 계절 변화와 무관하게 훈풍 불기에 여념이 없다. 목표는 딱 하나, 경제 살리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영어의 몸이거나 재판 중인 대기업 총수 문제를 건드렸다. 황 장관은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인들의 사면ㆍ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했다. 최 부총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힘을 보탰다. 풍선을 띄워 바람의 방향을 보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청와대는 “아는 바 없고 드릴 말씀도 없다”고 물러섰다.
생소하지 않은 흐름이다. 그래서 ‘최ㆍ황 콤비’의 말과 청와대의 2선(線) 대기는 총수 사면론의 ‘기승전결’을 유추 가능케 한다. 2010년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복귀했다. 삼성특검 여파로 물러난지 23개월 만이었다. 이 회장의 ‘자가발전’으론 복귀가 어려웠다. 직전해 말, 단독 특별사면을 받았기에 컴백에 걸림돌은 없었다. 다만, 한국의 명망가가 뭘하든 항상 막판에 신경쓰는 여론 풍향이 싸늘했다.
묘책이 나왔다. 이 회장 부재(不在) 동안 삼성을 이끌던 계열사 사장단이 경영위기를 거론하며 ‘회장님 돌아오시라’는 건의문을 썼다. 3자가 개입할 여지가 확 줄었다. 아들ㆍ딸이 아버지가 돌아와야 집안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하는 데 여기다 대고 누가 감놔라배놔라 하겠는가. 건의문 이전에도 삼성의 ‘키맨’들이 군불을 땠다. 당시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과 권오현 반도체사업부 사장이 이 회장 복귀 현실화 6개월 전, 이건희 회장과 일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만들었다.
삼성의 ‘최ㆍ권 콤비’가 한 일을 박근혜정부에선 ‘최ㆍ황 콤비’가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케일만 기업에서 국가 차원으로 확대된 정도다. 박 대통령에겐 경제가 최우선이다. 세월호 정국 장기화로 집권 1년 반이 훌쩍 지났는데도 성과가 전무하다시피하다. 대기업과 동행이 아쉬운 처지다.
거칠게 표현하면 정부와 대기업간 ‘바터(Barterㆍ물물교환)’의 증좌도 있다. 간판 이름이 긴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창조경제는 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 패러다임이다. 애초 지방자치단체와 중소ㆍ중견기업간 자생력에 맡겨 창조경제의 꽃을 피우려던 게 이 센터였다.
그런데 작동이 잘 되지 않았는지, 17개 대기업을 투입했다.(청와대는 대기업 참여 아이디어는 기획단계부터 있었다고 주장한다). 삼성ㆍ현대차ㆍLG부터 네이버, 다음도 포함됐다. 총수 사면론 수혜의 한 가운데 있는 SK는 센터 2곳을 맡았고, CJ도 참여했다. 수 천억원을 들여 정부 정책에 힘을 보태는 이유는 굳이 핀셋으로 뽑아 들춰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최ㆍ황 콤비’가 말을 꺼냈으니, 삼성 사장단의 건의문처럼 전경련 정도가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총수 사면 탄원서를 낼 수 있다.멀찌감치 물러서 있던 박 대통령은 무르익은 분위기 속에 결정만 하면 된다. 시기는 더 추워지기 전인 성탄절이 무난하다. 어차피 경제민주화도 없던 일이 된 마당에 앞만 보고 달리는 게 그에겐 상책일 수 있다.
/
hongi@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