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자간담회·팬미팅…세대초월 소환

“다 내려놓으니 이뤄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식당) 서버로 살았는데, 정말 믿겨 지지가 않아요.”

미래가 30년을 앞서간 ‘시간 여행자’를 소환했다. 지드래곤을 닮은 ‘요즘 얼굴’과 앞서 간 스타일 탓에 90년대 GD(지드래곤), 탑골 GD로 불리는 남자. 놀란 표정을 잘 짓지 못한다던 양준일〈사진〉의 얼굴은 낯설고 당혹스러운 상황을 마주한 사람의 것이었다.

12월 31일 오후, 가수 양준일의 생애 첫 기자간담회와 팬미팅이 열렸다. 영하 10℃의 한파는 ‘팬심’ 앞에 위력을 잃었다. 팬미팅 세 시간 전부터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는 양준일을 기다리는 팬들로 가득 찼다. 이날의 현장은 세대를 초월했다. 양준일과 동시대를 보낸 50~60대부터 사라졌던 ‘과거 속 가수’를 발굴한 10~20대 팬들까지 총 3600명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

지금 양준일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깝다. 유튜브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은 양준일을 소환한 계기였다. 트렌디한 음악과 세련된 무대 매너는 당대에는 외면 받았지만 새로운 음악에 열광하는 Z(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들은 한눈에 알아봤다. 최근 출연한 ‘슈가맨3’는 양준일을 문화 현상으로 만든 계기였다.

1991년 데뷔해 활동할 당시 양준일은 시대가 앞서간 ‘비운의 천재’였다. 영어 가사가 너무 많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정지되고, 무대에 서면 돌이나 신발이 날아오기 일쑤였다. 출입국 사무소 직원은 “외국인이 왜 한국 사람 일자리를 뺏냐”며 비자 갱신을 거부했다.

과거의 상처는 이미 지웠다. 양준일은 “그 당시 힘든 일들도 있있지만,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나의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도 슬프지 않은 것은 한국에서의 더 좋은 추억이 있고, 대한민국에서 저를 따뜻하게 받아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팬들의 따뜻한 마음이 지난 날을 잊게 만들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감히 대한민국을 감싸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거슬러온 양준일의 음악과 몸짓은 지금 들어도 남다르고, 트렌디하다. 팬미팅 현장에서 만난 지수연(21) 씨는 “30년 전 음악인데도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고, 유수진(36) 씨는 “무대에서의 모습이 천생 아티스트 같아 너무나 멋있다”고 했다.

가슴에 묻어두고 내려놓았던 가수로서의 꿈은 30년이 지나서야 다시 꺼낼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의 러브콜도 치열하다. 그는 “20대에도 50대에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더이상 원치 않으니 이뤄진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며 “그 시절엔 내려놓기가 너무나 힘들었는데 그것을 다시 원하는 것이 옳은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팬들이 원할 때까지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고, 가수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다. 물론 활동 계획도 있다. 지난 이야기를 담은 책 출간을 준비 중이며, 과거에 냈던 세 장의 앨범을 재편곡하고 녹음해 발매할 예정이다.

팬들에게 양준일은 희망과 힐링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박명희(54) 씨는 “지금의 좋은 모습이 어려운 삶의 고비들을 잘 넘겨온 결과물을 보는 것 같다”며 “양준일 씨가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평론가는 “50대가 넘은 지금도 괜찮은 아티스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이 든 세대에게는 위로를 주고, 젊은 세대에겐 위안을 준다”며 “젊은 세대의 불안 중 하나는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양준일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 세대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분석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