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홍성원 기자]박근혜 대통령의 24일(현지시간) 제69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남북한 통일을 위한 과정에 유엔과 국제사회가 함께 노력해달라고 요청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A4용지 8장 분량의 연설문에서 북한 문제가 3장에 달하는 등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북한이라는 단어는 15회, 인권은 12회 언급했다.
통일이 단순히 남북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 지구적 문제’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다자회의에서 처음으로 북한을 적시하는 단호함을 보였다. 관심을 모았던 일본군 위안부 이슈는 일본을 직접 지칭하지 않은 채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며 우회압박했다.
▶통일과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에 유엔 주도 요청=박 대통령은 남북한 분단의 아픔을 끝내는 데 세계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통일이 유럽통합을 이뤄 새로운 유럽의 주춧돌이 되었다면, 통일된 한반도는 새로운 동북아를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남북 통일이 동북아와 세계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동참을 호소하는 대목에선 간절함도 묻어났다. 그는 “1991년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지만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남과 북이 유엔에서 2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움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런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세계가 함께 나서주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최근 북한에 환경ㆍ민생ㆍ문화의 ‘통로’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고 소개하며 DMZ세계생태평화공원 건설에도 유엔의 주도가 긴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따라 만들어진 DMZ는 지난 60년간 사람의 왕래도 막았다”며 “그 사이 자연은 이곳에 생태계의 보고를 만들어 줬다. DMZ의 생태계는 남과 북이 하나이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면서 “DMZ의 작은 공간부터 철조망을 걷어내고 남북한 주민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소통할 수 있다면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은 생명과 평화의 통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 과정에 유엔이 앞장서 주길 부탁드린다”며 남북한, 미국, 중국 등 전쟁 당사자들의 참여도 제안했다.
▶북한 핵ㆍ인권 정면 거론=박 대통령은 북한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북핵 불용’의지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뜨거운 감자’인 북한 인권에 대해선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인권 문제에 민감한 북한으로선 발끈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감행한 유일한 국가”라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국제평화에 심각한 위협일 뿐 아니라 핵비확산 체제의 근간인 NPT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그럴 경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지난 3월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보고서상의 권고사항을 채택했다”며 “북한과 국제사회는 COI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유엔이 한국에 설치할 북한 인권사무소가 이러한 노력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아울러 국제사회는 탈북민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단어 사용 않고 짧게 언급=박 대통령은 한ㆍ일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우회적으로나마 이 문제를 거론한 건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는 “대한민국이 분쟁지역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여성과 아동들의 인도주의적 피해를 방지하는 데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을 막론하고 분명히 인권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이런 취지에서 작년 2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분쟁하 민간인 보호에 대한 고위급 공개토의’를 개최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환기시켰고 ‘분쟁하 성폭력 방지 이니셔티브’의 대표국가로도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반인도적 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함으로써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압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식의 우회압박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최근 친서를 보내 올 가을 한ㆍ일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고 양국 정부의 고위급 채널이 가동되는 등 관계개선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진행되는 점을 감안해 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를 자극할만한 직접적 표현은 자제했다는 분석이다. 한ㆍ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선 일본의 위안부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은 불변인 것으로 풀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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