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부문 최초 미쉐린 스타 셰프 유현수
할머니와 장 담그며 ‘운명’처럼 요리 시작
전문교육 대신 주방서 경험 쌓아
미쉐린 스타는 가장 의미있는 커리어
“한식은 본능…한식의 진수 알려갈 것”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어제도 겨우 한끼 먹었어요. 어디 초대 받아 차려진 거 먹으면 모를까. 일상적으로는 거의 ‘주워먹어’요. 요리할 때 배 채울 겸 일부러 간을 많이 보기도 하고.(웃음)”
국내 최초 한식 미쉐린(미슐랭) 셰프라면 9첩 반상까진 아니더라도 정갈한 한식 한상 정도는 평소 차려먹지 않을까 했다. 기대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방송에서도 익숙한 스타 셰프의 실제 식생활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두레유’ 2호점에서 만난 유현수(41) 셰프는 “휴일이 따로 없고 잠깐 여유가 생겨 쉴 때가 휴일”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매주 월요일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녹화에 참여한다. 운영 중인 한식당 두레유 2호점을 지난해 평창동에 내면서, 가회동(1호점)과 평창동을 오가는 데 대부분 시간을 쓴다. 지난 해부터는 정화예대 외식산업학부 특임 교수로 임용돼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다. 특강에도 종종 나선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 중인 듯 하지만 그 목표점은 하나의 방향으로 통한다. 바로 ‘한식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그는 한식이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운 요리가 아닌, 냉장고 재료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요리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또 고급 한정식집 외에도 한식을 제대로 즐길 만한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가고 싶다. 애당초 그를 셰프의 길에 들어서게 한 것도 한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었다.
▶요리 시작한 건 ‘운명’=처음 요리에 입문한 계기를 물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운명’이었다. 여느 성장 드라마의 에피소드와 같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늘 음식 가까이 있었다. 아버지가 요식업에 몸 담았었고,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다. 할머니와 함께 장 담그고 김치 담그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요리를 경험하면서, 막연히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중에서도 ‘한식’을 택한 것은 단순히 해보고 싶은 것을 넘어 ‘잘 할 수 있는 것’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음식이 아무래도 가장 친숙하고 이해도가 높겠죠. 양식이나 다른 분야를 꾸준하게 열심히 한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를 순 있겠지만, 다른나라 음식을 100% 이해하긴 어려웠을 거라 생각해요. 한식은 어렸을 때부터 먹고 자랐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더 넓지 않을까 생각했죠.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한식이 좋았어요.”
그가 셰프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은 물론 주위 대부분이 말렸다. 지금은 셰프가 10~20대가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지만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특히 제대로 갖춰입고 하는 호텔 요리가 아닌 한식 요리사에 대한 인식은 더욱 박했다. 레스토랑 비즈니스 역사가 짧다보니 한식당은 주방 시스템도 상대적으로 낙후돼 요리 과정에 위험 요소도 많았다.
이에 그는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경험하고자 2005년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그가 향한 곳은 전문 교육기관이 아닌 미쉐린 스타 셰프들의 주방이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그는 당장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궁금증이 더 컸다. 그들이 어떤 요리를 만들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음식이란 건 경험한 만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먹어보지 않은 맛은 낼 수가 없죠.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실행하는 스타일이에요. 한동안 사찰음식에 빠져서 1년 동안 스님들과 생활하기도 했죠. 경험이란 게 노력 없이는 얻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많이 먹어보고 경험하다보니 이제는 (음식을 보면) 어떤 맛일지 그려져요. 어떻게 만들면 되겠다는 것도 감이 오죠.”
▶미쉐린 별 전환점…고객반응에 매일 동기부여=2011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식당 ‘D6’, ‘이십사절기’ 등에서 총괄 셰프를 지냈다. 이십사절기는 ‘미식의 성서’로 불리는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에 2017년 소개됐다. 미쉐린가이드가 한국에 처음 진출한 후 24명 만이 받을 수 있다는 첫 별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그는 국내 최초로 한식부문 미쉐린 별을 획득한 셰프가 됐다. 2017년 1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두레유) 운영을 본격 시작했다.
미쉐린 스타 셰프 타이틀은 낯선 땅,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보낸 인고의 시간을 보상해주는 듯 했다. 그는 “지금까지 커리어에서 가장 의미있는 큰 상일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미쉐린이 보낸 찬사는 ‘요리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그에겐 필연의 결과인지 모른다. 성장해갈 자신에 대한 기대감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넘어서기에 충분했다.
“직장 생활에도 승진이든 월급이든 만족감이든 목표가 있잖아요. ‘성공한 셰프’를 두고도 여러 잣대가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미쉐린 수상이) 분명히 동기부여가 되는 면이 있어요. 물론 매일의 일상에선 음식값을 지불하고 가시는 분들이 오히려 ‘고맙다’, ‘잘먹고 간다’고 얘기해주실 때 행복해요.”
▶“다른 ‘디자인’이 유현수표 요리 경쟁력”=스물한살에 요리를 시작해 어느덧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요리에 있어 늘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해온 점이 자신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플레이팅 등 외형을 꾸미는 것만은 아니다. 같은 식재료, 메뉴를 보더라도 다르게 보려고 하는 시각 역시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범주에 포함된다.
“한식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한식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고(古) 조리서를 보면 지금의 서양식 레시피와는 완전히 달라요. 계량도 ‘몇 회’, ‘몇 홉’ 이런 식으로 심플하게 기록돼 있는데, 이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죠. 다만 모두가 똑같이 해석하면 의미가 없겠죠. 더 많은 셰프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전체 식문화가 발전할 수 있겠죠.”
옛 조리서나 풍속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외에도, 그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 노력한다. 레스토랑 두 곳을 운영하는 입장이다보니 20대 때처럼 훌쩍 떠나는 건 불가능해졌다. 다만 그는 “늘 가던 길도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일상 속 놓치기 쉬운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한다”고 말했다.
▶“한식은 한국인에겐 본능…무궁무진 정점(頂點) 알려갈 것”=일각에선 젊은세대 입맛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한식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시선을 보낸다. 이에 대해 그는 기우라고 말한다. “한국인에겐 자연스럽게 한식에 끌리는 ‘회귀본능’과 같은 DNA가 녹아있다”는 것이다.
“저희 식당(두레유)에 가족 단위로도 많이 오신다. 저희 음식 대부분 전통 장을 많이 사용해 맛을 내고, 간장을 코스에 그냥 내기도 하는데 어린 꼬마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젊은 사람들도 의외로 좋아하더라. 그게 본래 우리 입맛이라고 생각한다. 색다른 맛에 끌리다가도 결국 김치 찾고 라면 먹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다만 그는 한식의 세계화와 같은 구호가 자칫 ‘한식 우월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선 경계했다. 그는 “한식이 ‘최고의 건강 음식’이고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해’ 이건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인에게 최고의 음식인 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한식 문화를 알려가는 동시에, 한식이 까다로운 요리라는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똑같은 재료를 두고도 된장찌개보다는 파스타가, 나물요리보다는 샐러드 만들기가 더 손쉽게 생각되는 것이 그는 아쉽다.
“요리가 발달한 나라에 가면 고급 파인다이닝부터 캐주얼한 음식까지 두루 있어요. 한식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맞는 한식을 개발해 다양한 한식문화를 소개하고 싶어요. 또 한식에 대한 인식 변화를 줄 수 있는 작업들도 해나갈 생각입니다. 국외에 알려진 한식은 특히 굉장히 한정적이죠. 아직 한식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무궁무진한 한식의 정점(頂點)을 널리 알려가야죠. 셰프는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긴 호흡으로 갈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