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018년 최근 5년 간 사무장병원을 제외한 각급 병·의원의 ‘건강보험 부당청구’는 10만5863건. 환수결정액만도 7092억원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노인요양기관 경우에도 같은 기간 부정수급액은 994억원에 달했다. 부당행위로 적발된 비율이 88.5%일 정도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상황이다.
현재 노인 진료비가 전국민 진료비 총액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진료비 지출이 늘어나게 돼 건강보험 재정 불안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부정수급이 만연해지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도 위협받게 된다.
‘건강보험증 부정사용’도 부정수급 사례 중 하나다. 부정사용은 재정누수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보장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는 질병정보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타인의 진료건이 내 명의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도와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게다가 진료내역이 사보험 가입에 활용되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 법적 증거로도 쓰일 수 있는 중요한 개인정보이기도 하다. 질병정보 왜곡으로 인한 피해는 피도용자 개인과 정책에 그치지 않고 국민 모두에게 미치게 되는 셈이다.
영화 ‘화차’는 결혼을 앞두고 홀연히 사라진 약혼녀를 추적하다 그의 이름과 신분이 모두 가짜임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렸다. 이렇게 나의 지인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하거나, 생면부지의 타인이 어딘가에서 내 행세를 하고 있다면? 그 황당함과 공포는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건강보험에선 이런 상황이 빈발한다. 여러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번갈아가며 사용, 수면제를 다량으로 처방받기도 한다. 타인 명의로 암 진단을 받고 1년 넘게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이도 있다.
뒷 사례에서 피도용자는 본인 이름으로 나온 국민연금 사망일시금 안내를 받고서야 도용 사실을 알았다. 건강보험 부정사용으로 인한 재정 피해액도 적지 않다. 지난 6년간 적발된 건강보험증 부정사용자는 6871명. 이들에게 지출된 공단부담금만 76억여원이다.
건강보험 부정사용은 지인이나 친인척 간 은밀하게 이뤄져 여간해선 도용·대여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이런 탓에 실제 피해액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이 대여·도용 사실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개인의 진료기록만으로 이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피도용자의 인지촉구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 신고 경위를 살펴보면, 병원에서 우연히 알게 돼 제보에 이른 건도 있다. 하지만 공단에서 송부한 ‘진료받은 내용 안내’와 기획조사를 통해 도용사실을 인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처벌규정을 강화하고 신고포상금제도를 올해 신설했다. 대한병원협회와 협약도 맺어 부정사용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보험자와 공급자가 협력해 부정사용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취지다. 우선 입원환자만이라도 신분증을 확인하자는 게 협약의 핵심 내용. 이를 바탕으로 9월 1일부터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신분증 확인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처음 방문한 병원이라도 이름·주민번호·주소 정도만 알려주면 신분 확인 없이 진료를 볼 수 있다. 입원 때 신분증을 제시받고, 이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사용 예방이 가능하다.
이런 간단한 수고만으로도 건전한 수급질서가 확립되고 재정누수를 막을 수 있다. 보험자·의료소비자·의료공급자가 책임의식을 갖고 합심하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확보에 적잖은 힘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