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한 탁구 감독으로부터 자기 팀이 우승한 이야기를 기사로 다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자가 알아서 기사를 쓰면 그만인 까닭에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하루 전인 31일 모 방송사가 A 탁구선수의 무면허 뺑소니 교통사고와 이와 관련된 은폐, 그리고 승부조작까지 보도했다. 앞서 지난해까지 팀동료였고, A 선수 및 소속팀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B선수가 지난 1월부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A선수와 팀에 복수를 하겠다’며 내부고발자로 나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것이 현실화된 듯싶었다. 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해당팀과 대한탁구협회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했고, 지금은 스포츠공정위 개최와 징계 등 구체적인 사태수습을 밟는다고 한다. 이야기들이 영 불쾌하다. # 다시 우승 이야기.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축하를 전하고 싶다. 2008년 이후 대한탁구협회의 회장사(지금은 최대 후원사)였던 대한항공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의 간판선수였던 양하은(현 포스코에너지)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고 조양호 회장이 2008년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은 이후 11년간 매년 10억 원씩 탁구를 후원했다. 많은 돈을 냈지만 조 회장이 탁구장을 찾은 것은 대표팀 훈련장 방문을 포함해도 2번을 넘지 않는다. 회장에 당선된 이후 대의원총회에도 매년 불참했다. 탁구인들을 진심으로 존중한 것인지, 돈의 힘으로 탁구인들의 존중을 받으려는 것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디테일을 모르는 회장 대신, 탁구지도자로 대한항공에 입사해 ‘그룹서열 넘버5’가 된 이유성 전무(62)가 한국탁구의 실세였다. # 좋은 것도 10년 이상 지속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많은 탁구인들이 대한항공 시절의 대한탁구협회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지난 5월 선거 때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대한항공 측 후보’라는 비판이었다. 당시 대한항공 쪽 몇몇 사람들은 “솔직히 협회가 욕을 먹는 것은 7할이 양하은 때문”이라고 자가진단을 했다. 걸출한 주니어선수였던 양하은(25)은 2012년 대한항공 탁구단에 입단했고, 토종에이스로 좋은 성적을 냈다. 문제는 ‘회장사 선수’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탁구계 속살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이니 ‘양하은 특혜’에 대한 구구한 논증은 생략한다. 대신 2018년 스웨덴(할름스타드) 세계선수권의 준결승 스토리는 기록으로 남겨둘 가치가 있으니 적시한다.
# 당시 세계선수권에서 남북한 여자대표팀은 유례가 없고, 앞으로 나오기 힘든 ‘대회 도중 단일팀’을 성사시켰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남북정상이 만나고, 미국까지 대화상대로 나서면서 한반도 평화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던 시기이니 나름 적절했다. 8강에서 남북이 대결하는 대신 단일팀을 만들어 바로 4강에 올랐고, 일본과 맞붙었다. 결과는 0-3 완패. 전지희(한국, 포스코에너지)-김송이(북한)가 1, 2단식에서 졌고, 3단식으로 양하은(대한항공)이 나가 역시 패했다. 문제는 3단식은 누가 봐도 서효원(마사회)이 나가야 했다는 점. 그런데 경기 전 대한탁구협회 고위층이 감독에게 오더를 내렸고, 한국감독으로 이를 전달 받은 북한측은 반발했다. 결국 수용했지만 북한 지도자는 “우리한테 큰 거 하나 빚진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단일팀까지 국내용 특혜를 강행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 이런 양하은이 2019년 초 대한항공과 재계약을 놓고 마찰을 빚더니, 4월 포스코에너지로 이적했다. 당연히 탁구계에서는 아주 당혹스러운 뉴스였다. 아무리 양하은과 그 전담코치가 포스코에너지와 친하다고 해도, 대한탁구협회가 욕을 먹을 정도로 대한항공의 상징이었던 양하은이 다른 팀으로 가 버렸으니 말이다. 1~2월 대표선발전 때도 ‘양하은 때문에 대표선발전 규정을 대한탁구협회가 슬쩍 바꿨다’는 비판이 크게 불거졌으니 더욱 그랬다. 더 가관인 것은 이적 후 양하은 역차별론이 제기됐다는 것. 대한항공이라는 뒷배가 없어진 것은 물론, 이제는 괘씸죄를 더해 양하은이 대표팀 복식조 구성 등에서 홀대를 받는다는 주장이었다. 이쯤이면 코미디에 가까워진다.
# 핵심은 ‘탁구판 권력형 특혜’의 황당한 결말이다. 그리고 과거지사가 된 양하은 특혜의 정확한 진상은 알 길이 없다. 이유성 전무는 “내가 탁구장에 가면 말이 나오니 아예 탁구장에 가지 않는다”며 팔짝 뛴다. 대한항공은 회장사로 아낌없이 후원만 할 뿐 특혜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과 권력에 약한 일부인사들이 시쳇말로 '알아서 긴' 것일까? 확실한 것은 실세 이유성 전무의 탁구계 영향력이 대단했다(혹은 지금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올초 대한탁구협회의 산하연맹 회장에게 “000씨, 무식한 탁구인들을 만나고 다니지 마”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 포스코에너지의 양하은은 지난 5월 종별선수권에서 단체전과 복식(전지희와 한 조)에서 이미 우승했다. 1일 끝난 2019 실업탁구챔피언전은 단체전 우승을 도왔다. 전지희와 조를 이뤄 준결승 대한항공 전에서, 그리고 결승 삼성생명 전에서 복식경기에 나서 모두 이겼다. 더 이상 ‘회장사 선수’가 아니기에 양하은의 우승을 축하한다. 줄곧 대한항공 및 대한탁구협회와 가깝게 지내다가 냉큼 양하은을 데려간 포스코에너지도 얄미운 구석이 있지만 나가는 대회마다 정상에 오르니 그 점은 축하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불쾌하다. 이제는 회장사가 아니라며 슬쩍 넘어가려는 과거의 특혜가, 그리고 혹시 지금도 못된 특혜가 있을까 하는 우려가, 생활체육에서 붐이 일고 있는 탁구라는 좋은 스포츠를 몇몇 탁구인들이 이렇게 좀스럽게 만드는 것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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