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업계, 불매운동 확산되자 日맥주 할인행사 중단
-일본회사들은 신제품 출시 미루고 관련 행사도 취소
-韓·日기업 모두 “불똥 어디로 튈지 몰라 예의주시”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하루에만 80여통이 넘는 항의 전화를 받는 통에 다른 업무는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어요. 왜 일본 제품을 파냐고 직접 따지는 바람에…” 한 식품업계 관계자 A씨는 최근 전화벨소리에 숨부터 죽인다고 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 B씨는 “증권가 애널리스트들 뺨칠 정도로 지분구조와 투자유치 규모까지 도표로 정리한 것이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이를 갖고 직접 항의하시는 소비자들도 상당히 많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불매운동의 직접적인 표적이 된 일본 기업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본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판촉행사를 진행하는 등 여론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의 ‘일’자만 들어가도 항의가 빗발치다 보니 담당자들사이에선 일본 제품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소연할 정도로 바짝 엎드리고 있다.
26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국내 주요 편의점 본사는 내달부터 일본 맥주 행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CU는 오는 8월부터 ‘수입맥주 4캔 1만원’ 행사에서 아사히, 기린이치방, 삿뽀로 등 일본산 맥주를 제외하기로 했다. 일부 상품은 아예 발주를 중지했다. CU관계자는 “국민적 정서와 가맹점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내련 결정”이라고 말했다.
GS25도 내달부터 수입맥주 할인 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뺄 계획이다. 홍보물도 일본산 제품을 지우고 다시 제작해 가맹점에 배포할 예정이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일본산 맥주와 일본 기업이 보유한 코젤, 필스너우르켈 제품의 판촉 행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이미 소비자들은 일본 맥주를 구매하기 꺼려하고 있다”며 “7월 들어 일본 맥주의 편의점 매출은 최대 40% 줄었다”고 말했다.
유통기업 본사가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관련한 직접적인 조치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동·시민단체 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까지 보이콧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불매운동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기업이라도 해도 불매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했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마트 양재점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일본 맥주를 ‘6캔에 5000원’에 판매하는 할인행사를 진행하다 곤혹을 치렀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일제 소비를 독려하는 판촉 행사가 말이 되느냐며 양재점의 할인행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자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본사 차원의 할인 행사가 아니라 일부 점포의 일탈 행위라고 선을 그으며, 양재점의 할인행사를 즉시 중단시켰다.
이 사태의 여파로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던 일본 맥주 판촉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일본맥주의 재고가 쌓여있어 신규 발주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일본맥주를 찾는 고객들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매운동 명단에 포함된 일본 기업들은 숨죽이고 있다. 롯데아사히주류는 다음달 11일까지 서울 성동구와 용산구에 ‘아사히 수퍼드라이’ 팝업스토어를 열 계획이었다. 이 중 서울 성동구 팝업스토어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지만, 서울 용산구 팝업스토어는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행사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던 서울드래곤시티 호텔 측은 “팝업스토어를 기획했던 것은 사실이나 국민정서를 고려해 행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계 회사인 소니코리아와 JTI코리아도 지난 11일로 예정됐던 신제품 출시 행사를 취소했다. 두 회사는 각각 무선 이어폰과 담배 신제품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내부 사정을 이유로 행사를 무기한 연기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일감정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일본기업은 물론 한국기업들도 불매운동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면서 “불매운동이 거세지면서 홍보·마케팅과 행사 등을 축소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국내 기업은 불매 대상으로 찍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쿠팡은 누리꾼 사이에서 ‘일본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불매 대상으로 거론되자 자체 뉴스룸에 해명 글을 올렸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설립돼 성장했고, 사업의 99% 이상을 한국에서 운영한다”며 한국 기업임을 강조했다. 다이소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분류되는 한국기업”이라고 밝히며 불매 대상 기업에 오른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유통업체 관계자는 “일본기업과 직간접적 관계가 있는 기업들은 이를 해명하는 데 업무의 상당부분을 쏟고 있다”며 “사실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 온라인상에서 우리 회사 이름만이라도 거론되는 횟수가 좀 줄기를 바랄 뿐이다”고 하소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