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물 차올라 형성된 700m 병풍암벽 ‘부소담악’ 한눈에 다 담을 수 없는 절경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 생가 문학관에는 은은한 文香이…
포도·복숭아가 익어가는 옥천 도토리 등 구수한 묵 맛집도 손짓
딱히 대단한 절경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고, 국보급 문화재나 대형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묵호일수도 있고, 영주일지도 모르며, 순천이어도 무방하다.
어느 날, 충북 옥천이 그랬다. 대도시도 아니고 바닷가도 아닐 뿐더러 명산대찰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한번 가볼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울음을 운다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점은 작용을 했다. 일종의 ‘보험’같은 것이었다. 특별히 감명받을 만한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정지용의 고향을 가보는 것은 괜찮잖아? 라는….
서울에서 넉넉잡고 두시간 반이면 닿는 충북 옥천. 멀지도, 그렇다고 지척도 아닌 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다. 충청도라지만 옥천의 지형은 산과 계곡이 둘러싸고 있어 강원도의 그것과 흡사하다. 외갓집 하나쯤 있다면 제격일 것 같은 조용하고 잔잔한 산과 들과 물이 내왕객들을 맞아준다.
먼저 대청호와 어우러진 비경 부소담악(芙沼潭岳)으로 향했다.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위치한 부소담악은 우리나라 호숫가 풍광으로는 몇 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짙푸른 대청호를 둘러싸고 700여m의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혹은 산맥처럼 이어진 부소담악은 카메라를 들이대도 한번에 잡히지 않을 만큼 두 눈에 차고 넘친다. 우암 송시열은 ‘금강만큼 빼어난 소금강’이라 예찬했다는 말이 전해온다.부소담악은 추소리 부소무늬 마을 앞 호수에 떠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작은 마을은 80년대에 수몰로 사라졌고, 이제 그 이름은 부소담악에만 남아있게 됐다.
어떻게 호숫가를 따라 저런 바위절벽이 빚어졌을까. 사실 부소담악은 호숫가 절벽이 아니었으나 대청댐이 생겨나 산 아래가 물에 잡기면서 물 위로 바위평풍처럼 남게 된 것이다. 여타 관광지처럼 부소담악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번듯한 전망대는 없지만,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추소정에 오르면 부소담악이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을 지켜보기에 적당하다. 추소정 아래로는 대청호와 부소담악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있다면, 위로는 환산 도동산에는 산머리를 휘감은 물안개가 또 운치를 자아낸다.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눈호강을 하고난 뒤 옆에 조성된 데크길을 따라 느릿느릿 대청호를 따라 걸는 산책은 덤이다.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더 느껴보고 싶다면 산길을 따라 20여분 정도만 달리면 나타나는 수생식물학습원에 들러보는 것도 괜찮다. 입장료가 있는 시설이지만 잘 꾸며진 수목 화초와 연꽃, 대청호를 바라보면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노천 테이블 등이 있어 산책코스로 손색없다. 대청호의 경치를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느긋하게 둘러보다보면 사진을 찍고 싶은 포인트가 많다. 수련을 키우는 온실과 분재를 기르는 온실 등 독특한 공간들도 있으며, 전망대도 있다.
눈호강을 마쳤다면 옥천의 상징같은 시인 정지용의 흔적을 따라가본다.
옥천읍 하계리에는 복원해놓은 정지용의 생가와 정지용 문학관이 있다. 이 언저리 동네는 이제 향수길로 불린다. 이 골목에 있는 카페나 식당치고 가게이름이나 벽에 정지용 시 한소절 안걸친 집이 없을 정도다. 소박한 두칸짜리 생가에는 어색한 정지용 전신사진을 마루에 설치해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놓았다.
1902년 하계리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휘문고보,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마친 뒤 휘문고보와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휘문고보시절부터 시작에 몯두했던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과 청록파를 세상에 알린 것도 정지용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때 납북되는 과정에서 사망하면서 수십년간 금기어가 됐다. 88년 해금되면서 그의 시가 널리 회자되게 됐고 89년 ‘지용 시 문학상’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해 박인수 이동원이 부른 ‘향수’라는 곡도 나왔다.
정지용 문학관에는 이런 그의 인생과 문학이 전시물과 영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향수’ ‘호수1’ 등 편안한 시어들로 깊은 울림을 전해줬지만, 수십년간 이 땅에서는 마음놓고 읽어볼 수 없었던 정지용의 문학, 그 일부만이라도 접해본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다.
정지용 생가에서 도보로 2,3분 거리에 있는 옥천묵집은 한번 들러볼 만한 맛집으로 유명하다. 평일은 물론 토요일에도 가득 들어찬다(일요일은 휴무). 도토리로 만든 묵밥, 칼국수, 수제비에 무침이나 전 하나 곁들여 먹으면 구수한 묵맛을 즐길 수 있다. 제법 이름난 묵집들을 가봤지만 이집 묵밥의 진한 육수와 뜨끈한 묵의 조합은 다른 집에서 맛보기 어려운 감동을 안겨준다.
옥천은 또 포도와 복숭아가 맛있는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로 13번째를 맞는 ‘향수 옥천 포도 복숭아 축제’가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옥천공설운동장 일원에서 열린다. 처음에는 포도축제로 시작됐으나 5회때부터 포도 복숭아 축제로 확대됐다. 축제장에서는 싱싱한 포도와 복숭아를 맛보거나 구입할 수 있으며, 야외 공연장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옥천=김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