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업계 “수입과 역차별 해소…산업발전 기대” -고가 수입맥주, 수제맥주 가격인하 가능성 -타 주종은 “정부 연구 부족” 볼멘소리도 -소비자가 인하 효과는 당장 체감 어려울 듯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정부가 술의 제조 가격이 아닌 용량이나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맥주와 탁주(막걸리)를 시작으로 점진 확대해가기로 하면서 주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간 국산ㆍ수입맥주 간 과세 형평성 문제를 제기해온 국내 맥주업계는 반기고 나섰다. 종량세 적용이 유예된 다른 주종 제조사들은 50년 만의 주세 변화가 가져올 영향을 두고 ‘기대반 우려반’이다. 소비자들은 이번 주세 개편이 주류 가격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산 캔맥주 등에 기대되는 세금 인하가 소비자들이 체감할 만한 가격 인하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맥주 역차별 해소…고품질 탁주 활성화 기대감=“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입맥주에 비해 무거운 과세부담으로 인해 역차별을 주장해온 국내 맥주업계는 정부 개편안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기존 종가세 체제에서 국산맥주는 제조원가에 이윤, 판매관리비 등을 더한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매겨졌다면,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격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담해왔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그간 세금문제로 국내에서 생산하던 버드와이저, 호가든 등을 2년 전부터 수입해왔다”며 “종량세로 전환되면 국내 생산하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하이네켄, 칼스버그 등도 국내 위탁생산할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
특히 수제맥주업계는 종량세로의 전환을 강하게 주장해온 만큼 이번 개편안을 가장 반기고 있다. 다품종, 소규모 생산으로 제조원가는 높은데 대량 생산ㆍ유통할 여력은 안되다보니 가격대가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종량세 전환으로 가격 경쟁력 확보와 설비 투자 등이 가능해지는 동시에, 청년 고용창출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맥주업계와 온도차는 있지만 탁주업계도 종량세 도입 자체엔 긍정적 입장이다. 기존 종가세 체제에서도 세율이 5% 수준으로 낮았던 만큼 세금 경감 혜택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고급 원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막걸리 출시는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주세 개편안과 관련해 “업계 현실을 감안하면 (종량세) 단계적 도입이 최선책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 교수는 “국산맥주가 경쟁력을 갖게되고 특히 수제맥주가 좀 더 활성화되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며 “막걸리는 보다 고품질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라고 덧붙였다.
▶종량세 적용 제외 주종은 우려 남아=이번 종량세 전환에서 제외된 타 주종은 유보적 입장이다. 선진국 대부분이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방향성에는 찬성하지만 주종마다 특수성을 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다.
우선 종량세로 전환 시 가격인상 우려가 제기됐던 소주업계는 한숨은 돌렸다. 다만 고도주 소비가 떨어지는 시장 상황에서 주세 개편이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는 남아있다. 맥주 사업도 함께 하는 대형 제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방 소주업체들의 우려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현재준 한라산소주 국내영업본부장은 “주류산업 성장률이 저조한 상태이다보니 급격한 변화에 대해 우려가 있다”며 “(세제개편 영향과 관련해) 정부가 맥주 외에도 전 주종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고 의견 청취를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고 했다.
발효주업계는 이번 세제개편 추진 과정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 전통주업체 관계자는 “약주와 청주가 소주보다 저도주인데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종량세 전환 시 희석식소주보다 세율이 더 높아진다”며 “고도주 고세율 원칙에 어긋나는 것인데 이 부분을 보면 그간 연구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앞서 주세개편 관련 의견 청취를 위한 공청회 자리에서 정제민 한국와인생산자협회 회장은 “국내 소주든 와인이든 모두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만큼 지역문화와 농업이 결합된 상품인데 그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대안에 대한 논의가 빠진 부분이 아쉽다”고 했다.
▶캔맥주 값 인하? 소비자 체감 변화는 ‘글쎄’=소비자들 사이에선 종량세 전환으로 국산맥주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가격에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발표한 개정 세율 830.3원/ℓ에서 국산 캔맥주는 주세 포함한 총 세부담이 415원/ℓ 만큼 감소하지만, 생맥주는 445원/ℓ, 페트는 39원/ℓ, 병은 23원/ℓ 오르게 된다.(단 생맥주는 2년 간 20% 한시 경감) 기존 종가세 체제에서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는 수제맥주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격 인하를 할 수 있으나, 수입맥주보다 싸거나 비슷한 수준인 대형 제조사 맥주는 가격 변동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캔맥주 세부담이 낮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병이나 페트, 생맥주 부담은 올라가면서 상쇄되는 부분이 있고 다른 가격 인상 요인도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출고가 인하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종량세 도입 논의 당시 제기된 수입맥주 가격 인상 우려도 기우라고 정부와 업계는 말한다. 수입맥주의 경우 전체적으로 세 부담이 상승하는 건 사실이나, 고가 제품은 오히려 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 종량세 전환으로 830.3원/ℓ 세율이 일괄 적용되면 1000원/ℓ 수준이던 고가 맥주는 세부담이 낮아지고 700원/ℓ 수준이던 저가 맥주는 세부담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아울러 치열한 국내 맥주시장 경쟁을 감안하면 가격 상승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다수의 외국 맥주를 수입하는 국내 주요 주류사도 현재로선 종량세 전환으로 인한 가격 인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