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 = 홍승완 기자] 1666년 런던 전체가 화마에 휩싸인 적 있다. 젊은 제빵사의 실수로 빵굽는 화덕에서 시작된 불은 무서운 기세로 번져 5일만에 거대한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목조 기반이던 서민들의 가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화재 이후의 런던은 달라졌다. 시민들의 불의 무서움을 자각했고, 무엇보다 도시 전체를 불에강한 석조기반으로 재건하기 시작했다. 건축방화법이 만들어졌고, 요즘은 일반화된 화재보험회사들이 탄생하는 계기도 됐다. 새로운 런던이 탄생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영국사람들은 이사건을 ‘위대한 화재(Great Fire of London)’라고 부른다.
지난 금요일 발생한 KT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는 그 양상이 쓰나미(지진해일)와 비슷했다.
2m 남짓한 구멍에서 연기가 치솟을 때만해도 그냥 ‘화재 사건’이었지만, 진짜 피해와 혼란은 불이 꺼지고 나서야 거대한 파도처럼 우리모두에게 밀려왔다.
먹통이 된 휴대 전화에 사람들이 공중전화 앞에 늘어섰고, TV와 인터넷이 멈추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와이파이가 ‘터지는’ 카페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금없는 사회’의 기반이 되는 결제 시스템이 멈추자 먹고 사는 일도 멈춰섰다. 배달이 중단되고, 주차장에서는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차들이 갇혔다. 심지어 보습학원이나 심지어 교회들 조차도 시스템 마비에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주말을 보냈다.
단순히 ‘불편함’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일도 눈에 띄었다. 경찰의 상황 조회 휴대폰인 ‘폴리폰’도 마비됐고, 서울시가 자랑하는 버스정류장 안내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 119연결이 되지 않아 당뇨를 앓턴 노인 한 분이 사망하는 때를 놓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불탄건 통신구 79m, 유선전화 16만8000회선, 광케이블 220조(전선세트) 뿐이었지만, 이후에 벌어진 모습은 그간 대한민국의 어느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혼란이었다.
이번 화재는 우리가 지향해온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지, 초연결 사회에서 작은 기술적 오류가 일상을 마비시킬 수 있는 지가 가감없이 드러났다. 시스템 안정이 확보되지 않은 초연결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1차적인 책임은 물론 당사자인 KT에 있다. 전문가들은 “화재 위험에 대해 전혀 대비가 안되어 있었다는 게 문제다. 화재를 통해 의도적으로 국가를 마비시키는 일도 가능하다는 게 드러났다.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방재 기준은 충족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기간통신사’로써 서울 한복판 거점의 관리가 허술했다는 지적이다.
효율, 속도 일변도로 짜여진 우리나라 통신망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신천우 경성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일본 경우에는 지진 등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광케이블이 끊어지고 통신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회로를 만들거나 일종의 비상시 대체하는 기지국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언제건 등 화재나 자연재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비상시 대체할 통신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신망의 안정이 초연결사회의 필수 요소가 된 만큼 거대통신사업자들이 단순한 비용대비 효율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정부도 할 일이 많다. 빠른 사태수습과 재발방지책 수립과 함께 이번 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복기해봐야 한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라고 한 앨빈 토플러의 말에 취해, 우리는 그간 5G로 대변되는 초연결 사회를 달콤하게 ‘상상’하는 데만 급급했다. 누군가는 초연결 사회에 잠재된 각종 위험을 ‘예측’해야 한다. 작은 에러 하나가 초연결 사회 전체를 흔들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아주 꼼꼼하게 시뮬레이션 해보고 대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정부의 몫이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초연결사회에서는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진다. 시스템이 다운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상의 불편함을 물론 기업활동에 큰 타격이 가해진다. 개인이나 조직, 정부 모두 초연결사회에 100%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사고가 생기면 안된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보험같은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대비가 전혀 안돼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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