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의 일기장을 들춘다면 우리는 그 행동을 두고 ‘훔쳐본다’라고 표현한다. 일기(日記)는 개인의 기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본인이 먼저 일기를 꺼내어 들추고, 대중은 그것을 보고 즐기는 시대가 됐다. 사람들은 자신이 공부하거나 일하는 모습, 친구들과의 수다, TV를 보는 모습 등까지 적나라한 생활상을 영상으로 담아낸다. 때로는 노트에 자신의 상태를 써내려가듯 현재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영상으로 기록하는 공개일기 ‘브이로그(VLOG)’다. 이 트렌드에 발맞춰 최근 국내 대형 포털사이트가 개인적 영상 기능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브이로그'의 매력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가능성은 얼마나 큰지 미래의 시장을 점검한다.-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이소희 기자] “뷰티, 음식 관련 유튜브 영상을 자주 봤는데 어느 순간 콘텐츠들이 비슷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어떤 유튜버의 여행 브이로그를 봤는데 콘셉트가 정해져 있는 영상보다 더 재미있고 현실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후로 브이로그를 자주 찾아보게 됐죠”브이로그를 시작하고 싶어 고민하고 있다는 이지영(여·28) 씨는 해당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로 ‘상대적으로 덜 정제된 현실의 모습’을 들었다.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면, 반대로 기록을 엿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사적인 생활에 호기심을 느낀다. 더 나아가 지나치게 과장된 콘텐츠에 질린 시청자들은 보다 실제적인 것들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마치 관찰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인기를 얻는 것과 같다.이렇게 브이로그의 세계에서는 제작을 하는 자와 그것을 보려는 자의 니즈가 만나는 지점이 맞물린다. 그리고 이 교집합은 소통의 물결을 만든다.
■ 사람들은 어떤 영상을 좋아할까?브이로그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콘텐츠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리만족을 할 수 있거나 혹은 내 일상과 비슷하거나. 전자에는 외국 생활을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는 등 환경적인 요소와 감각적인 인테리어나 편집센스 등 개인적인 요소 등이 포함된다. 후자에는 집에서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고 외출을 하지 않는 날에는 민낯에 머리를 감지 않고 있거나,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등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에서 느끼는 공감이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 올라온 브이로그 영상의 댓글을 보면 “카페처럼 해놓고 사시는 게 부럽다” “외국에서 한 달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일본 마트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자주 보여줘서 좋다” 등과 같은 내용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버스 정차할 때 아이라인 그리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시험기간 때 간식 쌓아두는 건 다들 똑같구나” “망원동 카페를 자주 다니는데 여기 본 적 있다” 등 내용도 있다.다양한 시청욕구 속 시청자들이 유난히 매력을 느끼는 콘텐츠의 공통점은 하나다. 바로 ‘편안함’이다. 조회수가 높거나 댓글 반응이 좋은 영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집에서 혼자 나른한 일상을 보내거나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생활소음만 들리는 등 자극적인 요소가 없다. 최근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ASMR이 유행하는 것처럼, 화려한 콘텐츠에 지친 이들은 조용한 일상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브이로그에서 ‘이벤트’라고 불리는 포인트 또한 특별한 게 아니다. 친구를 만나거나 요리를 하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거나 정도다. 그래서인지 브이로그를 즐겨 보는 이들은 시간을 내서 시청을 하기보다, 밥을 먹을 때나 노트북 작업을 하는 등 다른 일을 하면서 틀어 놓는 경우가 많다. 딱히 집중이 필요한 콘텐츠가 아니면서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의 소리와 화면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브이로그를 즐기는 현상은 다른 사람의 일상 모습이 내 일상과 함께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공감’으로 만들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제작자와 시청자가 교류하는 과정은 오프라인 세계에서 친구를 사귈 때와 비슷하다. 구독자는 한 사람(브이로거)을 여러 번 만나면서 그 사람의 습관, 취향, 라이프 스타일을 저절로 파악하게 된다. 또 그에 대한 반응만 보이는 게 아니라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일상도 함께 털어놓는다. 이런 소통은 뷰티·패션 유튜버나 1인 방송으로 먹방이나 게임방송 등 특정한 틀을 지니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방식과 차별점이 된다. 사람들은 브이로그를 중심으로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거나 대화를 나누는 행위를 뛰어 넘어 서로의 일상에 스며든다. 개인의 기록에서 모두의 공감으로 나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일상을 공유하는 브이로그만의 특징이다. 유튜버 윤이는 “어제 일어났던 일을 오늘 저녁에 업로드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정말 친구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기분이 들곤 한다”면서 “구독자 분들의 얼굴은 모르지만 정말 친숙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나도 까먹고 있던 지난 영상의 일들을 말해줄때가 그렇다. 마치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웃어주고 좋아해주는 친구들 같다. 그런 친구들이 2만 명 넘게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인 일이다”라고 말했다.“내가 다시 보고 싶은 영상일기”를 위해 브이로그를 시작했다던 유튜버 선희는 “처음부터 많은 구독자나 수익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재미가 없는 내용일 수도 있지 않냐”면서 “그런데 많은 분들이 시간을 할애해서 영상을 봐주시고 또 댓글로 이런 저런 이야기와 마음을 건네주신다. 그런 걸 보면 조회수나 댓글 수, 구독자 수 등 나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수치가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댓글 등을 보면, 구독자와는 오프라인으로 보지 못한 사이인데도 이제 내 취향을 어느 정도 아시는 분들도 계시더라. 영상을 보고 힐링했다며 따뜻한 얘기를 해주시는 분, 영상에 영어 자막이 없음에도 영어로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도 계신다”면서 “이런 반응을 보면 ‘구독자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달라진 마음가짐을 털어놨다.실제로 어플리케이션 ‘브이로거(vlogr)’는 제작자와 구독자 사이의 현상과 니즈를 파악했다. ‘브이로거’에는 영상 편집 기능에서 더 나아가 SNS처럼 자신이 만든 브이로그를 올리고 다른 이들의 것도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와 피드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을 적절히 섞어 놓은 모양새다. 브이로거 관계자는 이런 기능에 대해 “브이로그는 만들어서 개인적으로 소장만 해도 생생한 일기라는 관점에서 가치를 지닌다”면서도 “하지만 만든 브이로그를 친구나 팔로워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공유하면 또 다른 가치가 생긴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업로더는 자신의 이야기에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이나 감성을 전달하며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시청자는 자신과 다른 삶의 이야기를 듣고 보며 새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다”면서 “브이로그를 공유할 때 생기는 이러한 가치들 때문에 ‘브이로거’를 단순한 영상 편집 어플리케이션이 아닌 브이로그 플랫폼으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일상의 편집] ①‘나혼자산다’·‘효리네민박’...결코 낯설지 않은 브이로그[일상의 편집] ②‘기록’ 위한 브이로그, 일상의 일부가 되다[일상의 편집] ③“개인의 기록→모두의 공감” 브이로그에 빠져드는 이유[일상의 편집] ④내가 나를 감시한다? 그럼에도 즐거운 약간의 용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