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개 품목에 대한 회수 작업 ‘지지부진’ -유통된 의약품 정보 실시간 파악되지 않아 -위탁생산으로 제네릭 찍어내는 구조도 문제 -과열한 경쟁 구도는 불법 리베이트 불씨로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고혈압약 ‘발사르탄’ 사태가 발생한지 곧 한 달이다. 하지만 이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문제가 된 의약품은 회수 작업을 진행 중인데 회수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이 몇백 개를 넘는다는 점도 암울한 국내 제약업계의 현실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의약품 유통 시스템과 지나치게 제네릭에 의존하는 국내 제약업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15개 품목 회수조치 중…회수율은 ‘글쎄’=지난 5일 유럽의약품청은 중국 원료의약품 업체 ‘제지앙화하이’사가 제조한 고혈압 치료제 원료 발사르탄 제제에서 2군 발암물질인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함유돼 있다는 것을 파악, 유럽에서 해당 원료를 사용한 발사르탄 제제에 대한 잠정 판매중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도 이틀뒤인 7일 국내 의약품에 대한 잠정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 조치를 취했다.

처음 식약처는 해당 원료 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된 219개 품목에 대해 판매중지를 했다. 이후 현장조사를 통해 해당 원료를 사용하지 않거나 아예 생산이 되고 있지 않은 품목을 제외한 115개 품목에 대해서만 판매중지 조치를 하고 회수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해당 업체들은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약처 등이 공급내역을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포털사이트에서도 해당 의약품 검색이 가능하도록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 약들이 현재 어느 유통 과정에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급내역에 나온 유통업체나 의료기관, 약국 등에 연락을 해보면 다른 곳으로 넘겼다, 처방 받아간 환자로부터 문의가 없다 등 소재 파악이 안되고 있다”며 “식약처에 제출한 회수계획 보고서의 회수율에 도달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한 고혈압 환자는 “보통 식품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회수 작업이 일사천리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약품 유통 체계가 이렇게 빈틈이 많을 줄 몰랐다”고 했다.

식약처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회수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8월 초까지 회수 절차를 마무리한다고 밝힌 만큼 그 때까지 최대한 품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업체와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떠오르는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 대안…비용이 부담=이번 발사르탄 제제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의약품이 한 번 제조사의 손을 떠나면 소재 파악이 쉽지 않은 것이 제약업계 현실이다. 의약품 유통 과정을 파악하는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 제약업계 유통 단계가 워낙 복잡하고 각 단계별 유통 기록 등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서다. 문제가 터져 회수를 해야 하는데 현재 해당 제품이 이미 소진돼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흘러 갔는지 등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업계에서는 이번 발사르탄 사태로 의약품 소재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를 대안으로 말하기도 한다.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란 의약품 포장 단위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바코드를 리더기로 찍어 실시간으로 의약품의 현재 위치와 이력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는 제약업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내년부터 이 제도는 의무화되는데 업계에서는 제도 도입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의 이력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문제 발생시 회수 등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일련번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제약ㆍ유통업체가 대부분”이라며 “다만 일련번호 제도 도입을 위한 초기 비용과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아 특히 중소제약사의 경우 비용 지원이 없다면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제네릭 ‘천국’…과도한 경쟁 부추겨=이번 발사르탄 사건으로 또 하나 불거져 나온 문제점은 과도한 제네릭의 난립이다. 식약처가 중국산 원료 의약품을 사용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살펴본 품목은 219개에 이른다. 이 중 115개 품목이 잠정 판매중지 조치를 당했다. 국내에서 발사르탄 제제를 사용한 고혈압 약은 500개가 넘고 국내에서 허가된 고혈압치료제는 2700여개나 된다.

이형기 서울대 임상약리학교실 교수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발사르탄 사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발사르탄 제제 고혈압 약만 500개가 넘을 정도로 한국은 제네릭 천국”이라며 “제네릭에 대한 편향적인 약가 우대정책과 품질 보증을 위협하는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에서 발사르탄 제제 리콜 대상이 된 품목 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너무나 많다. 영국은 5개 품목, 미국 10개 품목, 캐나다 21개 품목인데 반해 국내 판매중지 조치를 당한 품목은 115개다.

이런 현상은 하나의 오리지널 제품이 특허가 만료된 뒤 공동위탁 생동성시험을 통해 수 많은 제네릭이 쏟아져나오기 때문이다. 제네릭을 허가받기 위해선 오리지널과 동등한 효능을 보인다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현재 식약처는 제약사 스스로 제조 능력이 없더라도 위탁을 통해 공동으로 생동성시험을 거쳐 제네릭을 생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위탁 생산을 하다보니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마치 우리 회사가 제조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신뢰를 잃기도 한다”며 “또 제네릭 제품이 많이 나오다보니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불법 리베이트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렇다고 당장 국내사들에게 신약만을 개발하라고 하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다만 제네릭 난립을 점차 줄여가며 신약개발로 연구 방향을 유도하는 지원 등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