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출퇴근 등 유연근무제 도입 근무혁신 통한 저출산극복 실현 계기

실제 도입 기업 15.3%…갈길 멀어 공기업·금융권 빠르게 확산 긍정적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05명으로 1970년 출생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인구절벽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이 계속된다면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경제가 위축되고 소수의 젊은이가 다수의 늙은이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를 피할 수 없게된다. 젊은이들이 왜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지 파악하고 해결해내야 하는 것은 더이상 미뤄서는 안되는 화급한 과제다. 본지는 2016년에 청년들의 비혼ㆍ만혼 현상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저출산극복 기획시리즈를 시작했고, 작년에는 ‘아빠육아’를 주제로 여성의 ‘독박육아’ 문제해결을 어젠다로 제시한바 있다. 이번에는 3탄으로 일ㆍ생활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과 아이돌봄 인프라를 주제로 다룬다. 역대 최저치를 매년 갈아치우는 저출산 현상의 고착화는 맞벌이 가구 증가에 따른 육아부담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밸’ 문화 정착이 시급한 이유다.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 만들기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헤서는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격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저녁이 있는 삶, 아이돌봄 체계, 아동수당 등 정부와 민간을 망라한 우리 사회의 아이 키우기 인프라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게재한다.

유한킴벌리 직원들은 아침 출근시간이 7시부터 10시까지 30분 단위로 자유롭다. 시차출퇴근제 덕분이다. 전직원의 15%정도가 시차출퇴근을 활용하고 있다. 재택근무, 현장출퇴근, 4조 근무체제 등 유연근무도 활성화돼 있다. 일짜감치 전자결재시스템과 모바일회의시스템을 도입하고 스마트워크센터와 모바일오피스를 구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야근을 줄이기 위해 매일 오후 7시 30분에 모든 사무실의 불을 끈다. 연말이면 다음해에 12~15일의 재충전 데이를 미리 지정해 직원들이 함께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임신기 여성직원은 근로시간을 1일 2시간 단축해주는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운영중이다. 회사측은 “유연근무제를 통해 직무몰입도가 14% 증가하고, 사내소통지수 약 30% 상승하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비효율적인 장시간 근로문화에서 탈피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뤄 업무생산성까지 높아지는 진정한 ‘워라밸’을 실현한 셈이다.

임신으로 재택근무를 신청한 HR부문 사원 A씨는 “재택근무제도가 잘 돼 있고, 임신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배려해주는 사내 분위기 때문에 심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며 “이메일과 사내 메신저를 활용하고, 비즈니스용 스카이페(Skype)를 이용한 전화ㆍ화상회의 등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의약품 제조업체인 한국에자이는 지난 2016년부터 2년 연속으로 연차휴가 사용률 100%를 기록했다. 연가소진 100%캠페인으로 별도 승인 절차없이 연차휴가를 가도 되고 최고경영자(CEO)가 정기적으로 연차사용 독려 메시지를 보낸 것이 효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5년, 10년, 15년 근속 임직원을 대상으로 10일, 15일 안식휴가를 주고 여행비를 지원해준다. 매주 금요일은 1시간 일찍 퇴근한다. 대신 업무시간에 일을 집중하고 정시퇴근하는 ‘코어 워킹’(Core Working0 타임 운영,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로 업무성과를 높였다. 이 회사는 이직률이 2016년 8%에서 작년 7.8%로 더 낮아졌다. 영업인력 이직률은 3%에 그친다.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해 채용지원자 수가 667명으로 1년새 3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에자이는 모성보호를 위해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희망리턴프로그램’과 생리유급휴가를 실시해 일·생활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이 회사 관리직 B씨는 “육아휴직자로서 느끼는 압박감과 휴직으로 팀과 부서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컸는데, 미리 회사에서 3개월 전 대체자를 뽑아줬고, 복귀 때에도 배려를 해준 덕분에 다시 출근해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비효율적인 업무관행과 장시간 근로문화가 일과 생활의 불균형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린다는 공감대가 확산된데 따른 것이다. 일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회사는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고, 직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오는 7월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있어 정시퇴근, 업무집중도 향상, 유연근무제 확대, 휴가활성화 등 근무혁신은 피할 수 없다. 또 저출산 극복을 위해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직장인 1007명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에 관해 설문한 결과, 90.4%가 ‘유연근무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도입 기업은 15.3%에 그쳤다. 미국의 ‘시차출퇴근제’ 도입 기업 비율이 81%(2016년 기준)에 달하는 것에 견주어 현저히 낮다. 기업형태별로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31.0%로 가장 높고 외국계기업(27.6%), 대기업(24.1%) ,중견기업(14.0%), 중소기업(13.1%)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금융업종이 27.3%로 가장 높고, 중공업ㆍ조선ㆍ석유화학업(23.1%), 식음료ㆍ외식업(19.0%), 건설업(18.8%), 서비스업(17.5%), ITㆍ정보통신업(16.6%) 등의 순이었다.

유연근무제 형태로는 출퇴근 시간 선택이 가능한 자율출퇴근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이 37.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총근로시간 범위내에서 자율적 근무스케줄이 가능한 선택적 근로시간제 기업이 26.0%, 주5일 근무보다 근무시간이 짧은 단시간근무제(10.4%), 재택근무제(6.5%), 직무공유제(5.8%), 집중근무제(4.5%) 등의 순이었다.

다만 최근들어 유연근무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은 희소식이다. 인사혁신처 조사결과, 지난해 47개 중앙부처 17만4949명 중 유연근무제 이용자는 11만6131명(이용률 66.4%)으로 2016년도(3만7301명·22.0%)보다 2배 이상(7만8830명) 증가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유연근무를 당일에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출퇴근 시간뿐 아니라 점심시간 전후로 유연근무를 쓸 수 있게 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한 것이 이용률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민간에서는 금융권이 워라밸 추구에 가장 적극적이다. 우리은행은 우리 투게더휴가 의무사용, 유연근무제, PC-OFF 프로그램 제도,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 운영, 어린이집 운영 등 직원의 삶의질 향상과 육아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 투게더휴가에 자기계발휴가까지 붙여 사용하면 최장 16일동안 휴가를 갈 수 있다. 오후 7시에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OFF 프로그램’은 정시퇴근을 독려해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다.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금융권 최대규모 어린이집은 직원들의 육아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KB금융지주는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교육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향후 5년간 국공립 병설 유치원 최대 250개 학급, 초등 돌봄교실 1700여개의 신·증설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미취학 아동 5000명이 추가 취원할 수 있으며 3만5000명의 초등학생이 돌봄혜택을 받을 수 있게된다. 돌봄문제 해결은 당면한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경기도시공사는 여성의 출산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남성육아휴직 목표관리제’를 운영하고 있다. 인사규정의 ‘경력평정상의 불이익’ 조항을 삭제해 육아휴직에 따른 승진부담을 줄여주자 2016년 3명이던 남성육아휴직자가 지난해 5명으로 늘었다. 또 워라밸 실현을 위해 ‘시차출퇴근제’를 확대해 요일별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요일별시차출퇴근제’를 추가 도입했다. 매년 ‘연차사용 우수부서 포상’을 통해 연차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입학식, 부모참여수업, 학부모상담 등 자녀의 학교행사에 갈 수 있도록 연간 2일(3자녀 이상 3일)의 ‘자녀교육 휴가’를 신설했다. 휴가를 시간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제휴가’도 만들었다. 특히 임신직원에게 자신의 권리와 회사의 모성보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안내문으로 전달하고, 상담을 통해 회사생활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도담도담 프로젝트’가 인기다. 출산 시에는 ‘원스톱 지원서비스 시스템’으로 회사업무 처리를 대행해 준다.

김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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