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가 뭐길래

“이건희든 이재용이든, 뭐가 크게 다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의 총수를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롯데그룹의 총수를 신격호 명예회장에서 신동빈 회장으로 바꿨다. 어차피 부자 관계고 삼성이 곧 그들이요, 롯데가 곧 그들인데 무슨 차이가 있냐는 주변의 반응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의 총수 변경은 민감하게 봐야한다. 우선 공정위에서 사용하는 정확한 용어는 ‘총수’가 아닌 ‘동일인’이다. 그 사람이 곧 그 기업이란 뜻이다. 동일인이 갖고 있는 지분이 가장 많아서, 기업에 미치는 지배력과 의사결정력이 막강해서 그를 곧 기업 자체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해당기업에 위법행위가 있을 때 검찰이 이 동일인을 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일인이 바뀌었다는 건 ‘기준’이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공정위는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 문제로 꼽히는 계열사들끼리 일감을 몰아주거나 기업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으로 돌리는(사익편취) 일에 브레이크를 건다. 이때 자주 일어나는 위법행위가 친척, 인척들 사이의 거래다. 이에 공정위는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 비영리법인, 계열사, 임원 등의 범위를 정해 규제한다.

그런데 가령 지금까지는 이건희 회장의 4촌 이내 인척들이 가진 계열사 지분을 따져 삼성그룹의 범위를 확정했지만, 그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5촌 인척으로 바뀌면서 5촌 인척들의 계열사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공정위가 삼성의 실질적인 지배력이 이건희 회장이 아닌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 있다고 보고 친인척 범위의 기준이 되는 동일인을 바꾼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식이 없어도 “아들들이 아버지들 대신한 지가 언젠데 이제 바뀌었다고요?” 공정위가 동일인을 지정하는 데 있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비판이 계속되어왔다. 우선 동일인을 지정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공정위의 손에 달려있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의 지정요건은 ‘사실상 지배’여부다.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경영권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센 지 등을 공정위에서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까지 최대지분율을 갖고 있었던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명예회장이 각 그룹의 동일인으로 유지돼 왔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온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정위는 의식불명인 이건희 회장과 한정후견이 개시된 신격호 명예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해왔다”며 “비현실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현실성 있게 바뀌어야 이번 동일인 변경으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매번 공정위의 손짓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법적으로 손볼 곳이 아직 남은 이유다. 채 의원은 작년 9월 동일인과 대주주를 정하는 데 있어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향후 이건희 회장, 신격호 명예회장 때와 같은 일이 발생할 때를 막을 수 있는 동일인 변경 절차 등의 내용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동인일 지정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 규정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제 의원은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정재찬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롯데그룹 동일인이 신동빈 회장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는데도 롯데그룹의 동일인이 지금까지 신격호 총괄회장이었다”며 “현재 동일인 지정제도는 조선시대 ‘선위’처럼 사망 등 사유가 없다면 수십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게 실정”이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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