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이 인간들을 봐, 우리 원숭이처럼 행동하고 있어!” 유인원이 문명사회를 이루고 인간을 지배한다니… 1968년 등장한 ‘혹성탈출’ 시리즈는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인간과 유인원의 역전된 관계도 그렇지만, 스크린 속 유인원 분장은 당시로선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43년 뒤, ‘혹성탈출’이 부활했다. ‘유인원이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됐는지’를 되짚어보는 ‘프리퀄(시리즈 이전의 이야기)’ 형식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더이상 유인원을 분장 기술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간 디지털 그래픽 스튜디오들이 이룬 기술적 성장은 눈부셨다.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연기자에게 센서를 달아 움직임 정보를 인식, 영화에 재현하는 것)’ 기술을 통해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 CG) 캐릭터의 표정과 움직임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고전 ‘혹성탈출’이 세상에 나왔을 때, 관객들은 그보다 더 발전된 유인원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은 실사와 구분되지 않는 수준으로 구현됐다. 후속편인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2014)은 그보다 더 나아가 세계 최고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물론 이 또한 과거가 될 운명이다. 영화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영화기술의 발전도 멈추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분장기술의 승리, 고전 ‘혹성탈출’ =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시리즈를 지금 본다면 어색한 분장에 실소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각종 SF영화를 통해 실제와 구분되지 않는 분장 및 CG기술을 접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50여년 전 제작됐다는 걸 떠올리면, 당시로선 혁명이라고 할 만한 수준의 분장술을 선보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혹성탈출’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부문이 없던 시절, 그 해만 특별히 분장부문 특별상이 신설돼 수상했을 만큼 분장 기술의 새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사실 고전 ‘혹성탈출’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유인원을 실감나게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십세기폭스사는 투자를 주저했다. 위기의 프로젝트를 살려낸 건 특수분장사 존 챔버스였다. 그는 군대병원에서 팔, 다리 등 각종 신체부위 모형을 제작한 경험을 살려, 실제 생명체의 피부조직과 유사한 결의 원숭이 탈을 만들어냈다.

다만 눈빛이나 입모양 등 표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배우들은 오직 대사와 손동작 등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숨 구멍이 제대로 뚫려있지 않았던지, 배우들이 호흡할 때 탈이 미세하게 부풀었다가 쭈그러드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비운의 리메이크작, 2001년 팀 버튼의 ‘혹성탈출’=팀 버튼 감독이 ‘혹성탈출’의 리메이크를 준비할 당시 야심은 대단했다. 그는 고전과 비교해 보다 실제 원숭이에 가까운 분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심지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일주일 동안 원숭이와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기도 했다.

분장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유인원으로 변신하는 데 배우 한 명당 보통 4~5시간이 걸렸다. 배우들은 혹시라도 분장을 망칠까 거울을 보며 음식을 먹었고, 불에 취약한 분장 때문에 화상을 입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담배를 피워야 했다.

이같은 노력과는 별개로 팀 버튼의 재해석은 고전의 깊이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본편의 충격적인 반전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기존 ‘혹성탈출’ 팬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유인원의 제스처와 움직임은 자연스러워졌지만, 분장은 4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모션캡처’라는 신세계, 2011년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09년 개봉한 ‘아바타’는 3차원(3D) 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당시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27억8227만 달러(한화 약 2조7822원)의 수익을 벌어들였고, 지금까지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을 지키고 있다. ‘모션 캡처’ 기술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도 ‘아바타’ 덕분이다.

2011년 부활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유인원의 외관이 더이상 ‘분장’이 아닌 ‘CG’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아바타’에 쓰였던 모션캡처 기술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온몸의 관절 부위는 물론, 얼굴 근육에도 꼼꼼히 감지 센서(마커)를 부착해 촬영했다. 특히 이 영화의 ‘신의 한 수’는 모션 캡처 연기의 1인자로 불리는 배우 앤디 서키스였다. 그는 앞서 ‘반지의 제왕’(2001~2003) 속 ‘골룸’, ‘킹콩’(2005)의 ‘킹콩’ 역을 통해 CG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연기를 선보였다. 유인원 ‘시저’로 분한 앤디 서키스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고뇌하면서도, 유인원 집단을 강단 있게 이끄는 리더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실제보다더 실제같은, 2014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아바타’가 ‘마티즈’라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그랜저’라고 할 수 있다.” 그래픽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의 두 한국인 감독은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영화 속 기술력을 자신했다.

전편과의 3년 여 공백기간 이룬 기술적 발전은 상당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시도된 ‘라이브 퍼포먼스 캡처’ 기술에 영화계의 관심은 뜨겁다. 전편에선 모션 캡처 대부분이 실내에서 촬영됐다면, 이번엔 전체 촬영의 85% 이상이 야외에서 이뤄졌다. 또 스튜디오에서 나홀로 촬영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료 배우들과 어울려 촬영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배우들의 감정 연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스태프 입장에선 고도의 기술력은 물론,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정글과 도시를 오가고, 날씨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만큼, 유인원의 외모도 환경의 변화에 맞게 표현돼야 했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바짝 마른 털, 비에 젖은 털, 덜 마른 털, 먼지 붙은 털 등이 다 다르다. 눈동자에 맺힌 빛을 표현하는데 일주일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50여년 간 이룬 기술적 성취란 결국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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